임범 대중문화평론가
2년 전에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정해놓고 군에서 못 보게 한다는 뉴스를 듣고 놀랐다. 불온서적으로 꼽혔다는 책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소설가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시중에서 버젓이 파는 책을 못 보게 한다는 건가, 법적으로 문제 삼으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얼마 전 나온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듣고 또 놀랐다. 국방부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헌법이 엄연히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논리로 그런 결론을 내렸을까. 기사로는 궁금증이 안 풀려 헌재의 결정문을 읽어봤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전에 일간지 법조 기자를 하면서 헌재가 골치 아픈 사안에 대해 애써 즉답을 피해가며 결론을 내리는 모습을 몇 차례 봤다. 이번에도 그랬다.
“…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국가안보상황은 매우 가변적이어서… (군 복무규율의 ‘불온’은) 현실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불확정 개념으로 규율할 필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불온도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불온도서의 군 반입과 소지를 금지한) 조항은… 명확성원칙에 위배되는 법령조항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의 책이라면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 아닌가? 이런 책은 일반인도 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일반인은 보는데 군에선 못 본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데, 그런 ‘불온도서’가 도대체 어떤 거란 말인가? 당장 문제가 된 책들이 ‘불온도서’인 건 맞다는 건가? 청구인들은 <나쁜…> 등 23종의 책을 불온도서로 정해 군에 반입하지 못하도록 한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의 지시가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을 심사하면서 문제의 책들이 불온도서인지 아닌지 가려지겠구나 기대했지만 빗나갔다. 헌재는 “그 지시는 부대장들에게 내린 것이어서 장병들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사 대상이 안 된다며 각하해 버렸다.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헌재 스스로가 책 23권의 불온성 여부는 헌재의 권한 밖 문제여서 일일이 판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말이 된다. ‘문제의 책들이 불온도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국방부의 불온도서 지정은 정당하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의 비판자로 유명한 이다. 당연히 군에서 싫어할 인물인데,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는 2006년 5월 촘스키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생도 500명이 넘게 참석한 자리에서 촘스키는 당시 한창 진행중이던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전쟁? … 일본의 진주만 공습 전에 미국 언론은 미국이 일본을 불바다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럼 일본의 진주만 공습도 예방 전쟁 아닌가. 그게 정당한 것인가.”
웨스트포인트의 간부인 케이시 네프 중령은 “촘스키를 초청한 건 그의 주장을 듣고 논쟁을 촉발하기 위한 것”이라며 “촘스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지키는 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멋있지 않나. 여하튼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도서 23종에 촘스키가 쓴 책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이 들어 있다. 그리고 헌재는 이 책이 불온도서가 맞는지 틀리는지 답을 피한다.
멀쩡히 서점에서 파는 책들을 국방부가 불온도서로 지정한 지 2년이 넘었는데, 불온도서가 되더라도 최소한 사법부의 답은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23종 책의 저자나 출판사에게 헌법 소송을 내라고 권한다면,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게 될까.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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