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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인생은 아름다워’는 좋았다

등록 2010-11-14 20:46수정 2018-05-11 15:09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김수현 작가의 텔레비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흥미롭게 보았다. 우리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드러날지,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소재를 작가가 어떻게 끌고 나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수현은 우리 사회 보통사람들의 가치관에서 딱 한 발자국 정도만 앞에 나가지, 결코 튀거나 막장으로 치닫지 않았다. 그게 김수현표 드라마의 미덕이자 한계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랜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비판에 직면한 것을 보고 시기상조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시기상조라면 그래도 연륜과 생명력이 있는 김수현 작가가 다룬 것이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극본에 있던 성당에서의 언약식이 삭제되는 일을 작가가 겪었다니, 제작 과정에서 압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비판의 바탕에는 동성애는 전염되거나 물이 드는 것이고, 동성애자는 모두 폭력적으로 누군가를 동성애자로 만들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동성애에 관해서는 보통의 부모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아들이 자기가 가끔 가는 카페 주인이 게이라고 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거기 가지 마’였다. 왜? 라고 묻는 아들의 솜털이 뽀송한 얼굴을 바라보며 ‘왜긴, 위험하니까… 일단 그런 사람들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우물쭈물 답했다. 아들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하면서 ‘엄마는 이 세상의 모든 동성애자들은 강간자라고 생각하세요? 엄마는 이성애자니까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 강간자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라고 정색을 하고 물어서 난감해졌다.

10년 전 일이지만 그날 아들에게 들킨 나의 무지와 허둥지둥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동성애는 이해하지만 내 자식만은, 혹은 그런 곳에 드나들다가 나이 많은 카페 주인이 어린 아들을 꼬셔서 동성애자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보니 주변에도 동성애자들이 몇몇 있다. 그들도 취향이 제각각이어서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것도 아니고 이성애자들처럼 짝을 못 찾아서 외로워하고 떠난 애인을 그리워하고 서로 차고 차이고 갈등과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사실상 부모들이 더욱 염려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 만연한 이성애자에 의한 성폭력이다. 상대적으로 동성애자에 의한 성폭력은 적다. 성에 관하여 금기시되거나 지탄받아야 할 일은 미성년을 상대로 혹은 권력으로 돈으로 힘으로 상하관계로 성행위를 하는 모든 성폭력이다.

학부모 단체와 군대 관련 단체가 나서서 비판하고 성명을 내고 하는 것은 학교나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상사나 교사가 동성애자이면 성적 결정권이 없는 자녀들이 희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똑같은 성폭력이고 똑같은 값으로만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일 뿐이지 동성애 자체로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하나다. 자녀가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 자기가 원하는 짝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부모들의 염려는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함부로 멸시하고 왕따가 되는 동성애자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비판 속에 끝을 맺고 모든 화살은 작가가 받았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의 의식이나 고정관념을 고쳐주는 긍정적인 구실도 했다. 집안 좋고 직업도 좋은 꽃미남 두명의 동성애라는 것이 주효하기도 했지만, 드라마의 결말처럼 자녀들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앞으로 동성애 문제가 나올 때마다 안방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를 본 시청자들에게 뭔가 한번 더 생각할 기회를 준 것은 또다른 사회적 성숙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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