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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현병철과 엠비 / 정재권

등록 2010-11-17 20:26수정 2010-11-18 09:31

정재권 사회부문 편집장
정재권 사회부문 편집장
누가 그랬던가. ‘불길한 예감일수록 맞아떨어진다’고.

지난해 7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현병철 한양사이버대학장이 “인권위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위원장 내정 사실을 오늘 아침 알았다”고 말했을 때, 겸손이겠거니 하면서도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양반 혹시 대형 사고 치는 것 아냐?’

그리고 불과 1년여 뒤,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인권위의 뒷걸음질과 현 위원장의 독선 운영에 항의하며 3명의 상임·비상임위원이 물러났고, 64명의 전문·자문·상담위원이 사퇴 행렬에 가세했다. 인권위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에 현 위원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고, 660개 시민·인권단체는 그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인권위는 지금 현 위원장을 놓고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파행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꾸준한 진행형이었다. 인권 ‘문외한’인 그는 인권과는 반대의 길로만 내달렸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사건이나 박원순 변호사 명예훼손 소송 사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는 눈을 감았다. 인권위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기는커녕 상임위원회의 권한을 줄이는 조직개편안을 밀어붙였다. 인권위 안팎의 질책에 대해선 되레 “인권위가 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고 맞받아치고, 급기야는 “인권위가 외부의 힘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내놨다.

그러는 사이 인권위는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감시견이 아니라, 임명권자의 눈치만 살피고 권력에 고분고분한 푸들로 전락했다.

인권위의 파행이 비등점을 넘었는데도 현 위원장은 왜 뻔뻔하게 버틸까. 이유는 간단하다. 뒤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현 위원장의 태도에선 인권위 사태를 책임질 뜻이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설령 그가 물러나고 싶다고 해도 생각대로 되기 어려운 게 인권위를 둘러싼 정치지형의 현주소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일관되게 ‘인권위 무력화’에 매달렸다. 당선자 시절엔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 했고, 이런 방안이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사며 무산되자 인권위 조직을 21%나 축소시켰다. 인권위의 독립성과 권한에 대한 치명적인 훼손이다. 그러곤 결국 ‘해바라기형’ 무자격자로 인권위 수장을 교체했다.

시민사회의 반발이 한층 커지는 상황에서 후임 상임위원에 청와대 직속 미래기획위원인 김영혜 변호사를 앉힌 것은 ‘엠비(MB)식 마이웨이’의 전형이다. 이 인사로 이 대통령은 비판에 눈과 귀를 닫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외면할수록 인권위 사태는 눈덩이처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인권위는 이제 우리 사회의 양식 있는 계층이 이명박 정부를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 2008년의 ‘촛불집회’처럼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지만, ‘제2의 촛불’을 촉발할 만한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크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미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돼, 이명박 정부가 목을 매는 ‘국격’의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인권위 사태의 해법은 없을까.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이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면 된다. 이 대통령이 자존심 싸움을 지속할 생각이 아니라면, 인권위를 ‘인권위스러운’ 자리로 되돌리면 된다. 인권위의 발언이 귀에 따갑고 입맛에 맞지 않아도 포용한다는 자세를 가지면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현병철 위원장을 감싸며 ‘공동운명체’로 비쳐야 할 이유는 없다. 이 대통령이 인식을 전환한다면 자연스럽게 현 위원장도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문제는 단 하나, 그런데 엠비는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정재권 사회부문 편집장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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