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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눈] ‘촌스럽다’는 표현, 왜 부정적 의미로 쓰나

등록 2010-11-24 08:49

[시민편집인의눈] ‘촌스럽다’는 표현, 왜 부정적 의미로 쓰나
[시민편집인의눈] ‘촌스럽다’는 표현, 왜 부정적 의미로 쓰나
농촌을 말하는 언어의 공공성부터 회복해야
도시인을 위한 목가적 농촌기사도 현실 왜곡
사람의 생각은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드러난다. 그렇다면 ‘촌스럽다’는 말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까? 대체로 ‘세련되지 못하고 어수룩하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담겨 있다. 반대로 ‘도회적’이라는 말은 ‘세련되고 시대를 앞서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촌’이란 말 자체는 그렇지 않은데도 ‘촌스럽다’는 말이 맥락에 따라 부정적 의미로 자주 쓰이는 것을 보면, 언어의 의미를 그것이 사용된 맥락 안에서 파악한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최근 <한겨레> 지면에 등장한 ‘촌스럽다’는 말은 어떤 문맥에서 사용됐을까?

9일치 [아침햇발] ‘염치, 촌스러움, 그리고 착각’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우리 정부와 언론의 호들갑을 ‘촌스러움’이란 열쇳말로 조목조목 비판했다. “선진국일수록 있는 그대로의 ‘생얼’을 보여주는 반면, 뒤떨어진 나라일수록 ‘화장’에 의존하려 한다”는 맥락에서 “우리도 이제는 그런 종류의 촌스러움을 어지간히 졸업했다고 여겼는데 이번에 보니 착각이었다”고 썼다.

10일치 [한겨레 프리즘] ‘G20, 어떤 시상이 떠오르세요?’에서는 경북도교육청이 초등학생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주제로 ‘G20’을 포함시킨 것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주요 나라들 가운데 이렇게 촌스러운 나라가 있겠느냐고 한마디 해주고 넘어갈 수도 있다”고 표현했다.

11일치 [esc] ‘당신의 이름은 안녕하십니까’에서는 이름을 바꾼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특히 ‘촌스러운’ 이름에서 벗어나려는 중년층들의 개명신청도 늘고 있다”고 썼다.

외부 칼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28일치 [야! 한국사회] ‘스카이, 인서울, 이건 아니다’에서는 서울 중심 학벌사회에 편승해 살아가는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스카이, 인서울, 이건 나쁜 용어이고 창피한 단어이고 나쁜 구조’라고 지적하면서도 마지막 문단에서는 ‘참 촌스러운 놈들!’이라고 일갈했다.

비교적 잘 쓴 칼럼들조차 ‘촌스럽다’는 단어를 남발하는 이유는 농촌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데다 언론언어의 공공성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 입버릇처럼 전원생활을 그리워하고 개발주의를 혐오하는 진보논객들조차 도시에 사는 이점과 개발주의 환상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언어는 세상에 대한 관조가 아니라 삶의 실천과 연동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라고 비트겐슈타인은 주장한다. 지난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촌스러워 고마워요’라는 캠페인은 지식인들의 언어생활을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촌스럽다’는 단어의 의미를 바꾸기 위해, 아니,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국어사전 다시 쓰기’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촌스럽다’는 단어를 ‘순수한’ ‘정이 넘치는’ ‘자연스러운’ 등의 의미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 했는데, 농업과 농촌에 대한 그릇된 인식 또한 언론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농업에 ‘사양산업’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농업은 공산품 수출을 위해 희생돼도 좋은 부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온 것도 한국 언론이었다. 진보든 보수든 신문들은 도시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한겨레>도 농촌을 보도할 때 친환경 농업이나 귀농 이야기가 주 메뉴였다. 언론이 목가적인 농촌에 주목할 때 농촌 현실은 외면된다.

외국 언론들이 농업/농촌 전문기자를 두고 수준 높은 기사를 내보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미국 등 강대국과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모두 공업국인 동시에 농업국이다. 농업이 공업을 뒷받침하고 농촌사회가 활력을 유지하게 된 데는 농업에 대한 언론의 애정이 큰 몫을 했다. 농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 데 <한겨레>가 앞장설 수는 없을까? 농촌을 말하는 언어를 바로잡는 게 그 첫걸음이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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