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1년쯤 전부터 이따금 부암동 치킨집에 간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후배들과 주말에 맥주 한잔하기에 딱이다. 그 집의 치킨 맛도 좋지만, 도심 가까이에 숨듯 틀어박힌 부암동 동네 분위기가 맘을 편하게 해준다. 얼마 전 거기서 치킨 브랜드들이 도마에 올랐다. “난 ○○치킨이 좋아.” “난, △△△치킨.” 역시 난 구세대인 모양이다. 겨우 떠오른 게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지금 이름은 ‘케이에프씨’)이었다. 치킨을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 나는 이따금 고기가 당길 때 케이에프씨를 찾는데, 인기가 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구기동, 연희동의 점포도 오래전에 사라졌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케이에프씨의 창립자인 할런드 데이비드 샌더스(1890~1980)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5살 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자 어머니 대신 부엌일을 했고…, 학교도 일찍 그만두고 어머니 재혼 뒤엔 새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오고…, 16살 때 나이를 더 많게 속여 육군에 입대했고…, 제대 뒤 보험판매원, 철도 소방수 등 십여 가지 일을 전전하다가…, 마흔살에 주유소를 차리고 그 안에 식탁을 놓고 닭요리를 팔기 시작했고…, 그만의 비밀 레시피를 개발해 명성을 쌓다가 65살에 프랜차이즈 회사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고…, (케이에프씨 가게 앞 할아버지 동상처럼) 이후 20년 동안 매일같이 하얀 양복에 까만 줄 넥타이를 맸고…, 말년에 회사를 팔고 자선사업을 크게 벌였고…, 그가 만든 비밀 레시피는 여전히 본사 기밀 서랍 안에 보관돼 두 명만 그걸 볼 수 있고….
케이에프씨가 한국엔 1984년 들어와 2001년 매장이 237개까지 늘었다가 줄기 시작해 현재 130개가 됐단다. 한 보도를 보니, 몇 달 전 국내 치킨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케이에프씨’는 9위였다. 세계 굴지의 브랜드를 이렇게 밀어내다니, 한국의 치킨산업 대단하지 않은가. 아울러 이처럼 다수의 브랜드가 계속해서 각축전을 벌이는 업종도 드물지 않은가. 지난 2월 방영된 문화방송의 다큐멘터리 <치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의 치킨산업엔 단순히 치킨 맛만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경제적 변수들이 얽혀 있구나!’
이 다큐멘터리가 파고든 건 치킨이 아니라, 치킨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정리해고되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해서 실직한 뒤 치킨집을 차린 이들을 ‘치킨맨’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한국의 육계 생산량은, 69년에 폭발적으로 13배나 증가한 뒤로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도계된 닭이 6억8000만마리라고 한다. 시장은 계속 커져왔고, 창업에 필요한 자본이나 전문적 기술이 상대적으로 적고, 배달시켜 먹는 특성상 동네 친화적이고…, 그러다 보니 한국 치킨업 특유의 문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80년대 처음 양념치킨이 나왔을 때, ㅍ치킨 가맹점을 하면서 벌이가 좋아 돈을 세다가 잠든 적도 있다는 중년 부부,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나니 중소기업 월급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치킨집을 차린 청년, ㅆ자동차에서 15년 일하다 정리해고된 뒤 망연자실해 있다가 기운을 차리고 치킨집을 차린 아저씨…. ‘성공시대’의 꿈을 좇아 닭을 만지기 시작한 이도 있고, 더는 갈 곳이 없어 시작한 이도 있었다. 누구든 하루 30마리 이상은 팔아야 살 수 있다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치킨업은 지금 한국에서 완전히 독점되지 않은, 그래도 끼어들 여지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희망의 공간이랄까. 그래서 저마다 겪는 ‘인간시대’의 드라마가 부대끼는 삶의 각축장이기도 할 것이고.
신문들을 보면, 몇년 전부터 치킨업은 이미 과포화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유망 창업종목으로 이 업종을 소개하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내 아파트 문엔 치킨집 전단이 꽂혀 있었다. 롯데마트가 5000원짜리 치킨을 내놓자 벌집 쑤셔놓은 듯 요란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거기가 어떤 곳인데.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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