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정부의 ‘기다린다’는 대북전략 기조에 더해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북한 붕괴’ 발언들이 언론에 공개되더니, 급기야 지난 9일 말레이시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비장한 말을 던졌다.
기왕에 정부 주변에서 줄기차게 나돌던 ‘급변사태’론, 한-미 양국간 급변사태 대비론 등에 비춰 살펴보면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론을 시사한다고 해석할 소지가 크다.
맞장구라도 치듯이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보수 논객들 사이에서 통일담론이 유행하고 있다. 더이상 미래가 없는 북한과 대화나 협력이 통할 리 없으니 다 접고 곧바로 통일로 직행하자는 것이다.
지금이 민족통일이라는 소명에 응할 적절한 시점임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통일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국민에게 준엄한 압박을 가하는 논객도 있다. 피를 흘리든 천문학적 비용이 들든 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통합론은 객관성과 절차적 합리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북한이 조만간 붕괴하고 그런 뒤에 우리가 흡수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북한이 내적으로 당면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붕괴로 환치되지는 않는다.
과거 1990년대 초에 북한붕괴론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는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근래에는 인접한 중국이 북한의 급변에 대한 반대 노선을 확실히 해놓았기 때문에 붕괴 확률이 높지 않다.
설혹 붕괴되더라도 우리가 흡수통합할 수 있느냐는 또다른 문제다. 한-미 군사계획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미국은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서 또하나의 전쟁을 수행할 의사도 없고 역량도 달린다. 전쟁이 일어나면 조-중 우호조약에 의해 중국이 개입하게 된다.
현재 동북아 지정학과 북-중 관계로 미루어보면 중국이 뒤치다꺼리를 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태 전개를 우리가 감당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은 한마디로 대재앙이다. 다음으로 급진통일론은 절차적 합리성에 어긋난다. 일단 우리 헌법 전문에 명시된 “평화적 통일”에 위배된다. 2005년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법’ 제2조에 적시한 “한반도 평화통일 방향”이라는 국민적 합의와도 충돌한다. 법은 이루고자 하는 목적도 중시하지만 방법과 절차를 분명히 하기 위해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새겨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7·4 공동성명’에서부터 ‘2007 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기왕의 모든 남북 합의들에도 평화적 통일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단계를 건너뛰거나 생략하고 통일로 가자는 주장은 어떤 잣대에 비추어봐도 타당성이 없다. 정당성도 없고 현실적합성도 떨어진다. 북한 붕괴는 막아야 할 사태이지 통일의 지름길이 되지 못한다. 붕괴는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를 우발적 사건으로 다루어야지 외교안보정책 영역에 보란듯이 포함시켜 안팎으로 공론화할 사안은 아니다. 붕괴에 의한 흡수통합은 실로 과격하고도 급진적인 통일방법론이 아닐 수 없다. 보수정부와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론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일순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가능한 한 지키되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특성으로 삼는 ‘보수’가 가장 반보수적인 언술로써 정작 자신이 펼쳤어야 마땅한 지난 10년의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대북정책을 연일 공격하는 모습은 우리 지식인 사회의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수훈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현재 동북아 지정학과 북-중 관계로 미루어보면 중국이 뒤치다꺼리를 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태 전개를 우리가 감당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은 한마디로 대재앙이다. 다음으로 급진통일론은 절차적 합리성에 어긋난다. 일단 우리 헌법 전문에 명시된 “평화적 통일”에 위배된다. 2005년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법’ 제2조에 적시한 “한반도 평화통일 방향”이라는 국민적 합의와도 충돌한다. 법은 이루고자 하는 목적도 중시하지만 방법과 절차를 분명히 하기 위해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새겨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7·4 공동성명’에서부터 ‘2007 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기왕의 모든 남북 합의들에도 평화적 통일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단계를 건너뛰거나 생략하고 통일로 가자는 주장은 어떤 잣대에 비추어봐도 타당성이 없다. 정당성도 없고 현실적합성도 떨어진다. 북한 붕괴는 막아야 할 사태이지 통일의 지름길이 되지 못한다. 붕괴는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를 우발적 사건으로 다루어야지 외교안보정책 영역에 보란듯이 포함시켜 안팎으로 공론화할 사안은 아니다. 붕괴에 의한 흡수통합은 실로 과격하고도 급진적인 통일방법론이 아닐 수 없다. 보수정부와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론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일순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가능한 한 지키되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특성으로 삼는 ‘보수’가 가장 반보수적인 언술로써 정작 자신이 펼쳤어야 마땅한 지난 10년의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대북정책을 연일 공격하는 모습은 우리 지식인 사회의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수훈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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