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소설가
[문화 칼럼]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 도쿄에서는 강연회가, 아키타에서는 일본 작가들과의 대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강연회 주제가 ‘내 소설에 대해 말한다’라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행사에 참여하기로 한 애초의 약속을 주워담고만 싶어졌다. 내가 쓴 작품에 대해 내 입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하는 때만큼 난감한 순간도 드물기 때문이다. 소설 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미 세상에 내보낸 텍스트에 대해 주석과 변명을 덧붙이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닐 터이다. 한 권의 책을 읽은 백 명의 독자가 있다면 그 독후감은 분명 백 가지일 수밖에 없다. 모두들 제각각의 방식으로 읽어내고 느낀 것.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나 문학에 정답 비슷한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뿐이리라. 그러므로 나는 객석을 메운 일본 독자들을 향해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친애하는 여러분, 56페이지 둘째 줄의 문장, 그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부디 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오늘 아주 각별하고 기묘한 인연으로 여기서 만났고 서로 눈빛을 나누기에도 시간은 짧으니까요.”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가로놓인 기묘하고 각별한 인연의 존재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믿고 있다. 종종 서점의 한국소설 코너에서 내 책을 집어드는 손을 상상하곤 한다. 그 손의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그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일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일까. 휴대전화기에는 모두 몇 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을까. 마지막으로 사랑해, 라는 말을 한 건 언제일까. 그가 내 책을 집어드는 순간 우리의 은밀한 관계는 시작되었다.
그 손이 책 표지를 여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출근길의 지하철 안일까. 잠들기 직전 자정의 침대일까. 어쩌면 화장실일지도 모른다. 그곳이 어디이든 매우 개인적인 장소일 것이다. 한 줄의 글을 소리 없이 읽는 일, 누구에게나 독서란 그토록 내밀한 행위이므로. 당연하게도, 방금 그가 읽은 한 줄의 문장은 언제인가의 내가 조심스레 쓴 것이다. 헐렁한 티셔츠를 작업복 삼아 걸치고서 때론 허기를 참으며 때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보낸 그 시간들 역시 몹시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내러티브를 이루고 활자로 인쇄되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그러곤 세상 바깥으로 던져져 독자와 만난 것이다.
자, 이렇게 한 권의 책을 가운데 놓고서 두 개인이 조우했다. 독자라는 개인의 삶과 작가라는 개인의 삶이 순식간에 교차하고 서로에게 스며들어 마침내 ‘우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이것을 은밀하고 황홀한 소통이라고 부르고 싶다. 오로지 작가와 독자 사이에만 가능한 기적이다.
소설 쓰는 일은 참 외롭다.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무기력한 유령들과 싸우면서도 그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 쓰는 한 문장을 언젠가는 누군가가 읽어줄 거라는 조그만 기대 때문은 아닐까. 미지의 독자들과 내가 아주 가느다랗고 투명한 실로 연결되어 있음을 믿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간혹 독자들에게 바라는 게 없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단 한 명의 독자일지라도 책을 읽은 뒤 다시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눈앞에서 아주 작고 희미한 불빛 하나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고, 바로 그때에 왠지 모르지만 바로 당신의 소설이 떠올랐다고 속삭여주신다면. 그렇다면. 아, 더이상의 영광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소설가가 꽁꽁 숨겨놓은 세속적 욕망의 최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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