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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긴급조치 /권태선

등록 2010-12-19 20:36수정 2010-12-20 09:47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를 위헌으로 판결했다는 보도가 나온 날 인터넷엔 긴급조치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올라왔다. 대학에 갓 입학한 1974년 4월 긴급조치 4호 발령을 알리는 신문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이미 한 세대가 훌쩍 넘은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은 대법원의 위헌판결이 나오는 데 36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다.

1972년 10월유신이 선포되고 전국적인 비상계엄 아래서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유신헌법이 채택되는 서슬 퍼런 세월이었지만 압제에 대한 저항은 끊이지 않았다. 73년 10월 서울대에서 시작된 유신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박정희 정권이 내놓은 게 바로 긴급조치였다.

74년 1월8일 발령된 1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판과 개정 요구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해 군법회의에 회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독재권력의 전례 없는 강경조처였지만 이런 위협으로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잠재울 순 없었다. 정권은 긴급조치 4호, 9호 등으로 협박의 강도를 높여갔다. 시위 주모자에게 사형까지 선고했던 이 야만의 긴급조치 시대는 박정희 사후인 79년 12월8일 9호가 해제됨으로써 끝이 났다.

유신헌법 기초자들은 긴급조치권을 규정한 유신헌법 53조가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16조와 유사하다고 주장하지만 턱없는 이야기다. 프랑스 헌법 어디에도 사전적·예방적 조처를 포함한 무제한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은 없다. 긴급조치가 “당시 유신헌법상의 발동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채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사실은 당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었건만, 법원이 이를 확인하는 데는 36년이나 필요했다. 참으로 신중한 사법부라고 해야 할까.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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