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2011년도 예산안이 ‘날치기’되어 국민의 분노가 사라지기 전에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을 다음 과제로 내놓고 올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날치기’ 예산안에 뒷말이 많은데 개헌을 들고 나오는 것은 시의의 적절성은 고사하고 안하무인으로 군림하는 정부 여당의 오만성을 보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
이에 더해 김무성 원내대표는 ‘날치기’에다 “우리 국민과 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었다”고 정의 표를 붙였다. 그가 공언한 ‘정의’를 개헌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날치기 정의’로 개헌도 가능하다는 말이 아닌가. 거기에다 ‘70% 복지’를 내세웠던 안 대표는 자신이 공약한 복지예산이 제대로 챙겨졌는지 확인도 않은 채 의원 총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니 한나라당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식의 ‘희망’을 되살린다면 알맹이도 모르는 ‘보온병’ 개헌을 하지 않을까. ‘날치기’ 여력으로 개헌까지 밀고 가겠다는 행태를 보면서, 이게 집권당이 취할 자세인지 한숨과 분노가 교차한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를 골간으로 하여 개정된 현행 헌법은 당시 조급했던 정치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 시점에서 보면 비전문가에게도 한계가 눈에 띈다. 현행 헌법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단임제하에서 대통령은 임기 중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겠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날 수가 없다. 5년이라는 기간이 다른 선거와 주기가 맞지 않아 4년 주기에 익숙해 있는 유권자에게 불편하고 낭비가 심하다.
개헌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 집권층이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구나 예산을 날치기한 현 집권당이 추진하겠다면 용납할 수 없다. 개헌의 골자가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골격을 짜자는 문제와 관련된다면, 그건 집권세력의 정략적 저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보편적 개헌논의와 거리가 멀다.
먼저 개헌 시기의 부적절성이다. 대통령제를 유지했던 것은 남북관계의 특수성도 한몫했다. 민주적 책임정치로 말한다면 내각제만한 것이 없다지만, 남북 상황이 대통령제를 유지하도록 한 것은 국정의 혼란을 최대한 막아주는 비상시의 리더십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은 강력한 리더십을 더 요한다. 일부의 주장과 같이 대통령의 권한 비대 때문에 개헌해야 한다면, 이 헌법으로도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의 장점을 원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대통령제하에서 총리가 있는 것 자체가 그런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현 집권층에 의한 개헌 추진은 적절치 않다. 개헌의 한 동기가 현행 대통령제의 권한집중에 있다면, 현행법하에서 먼저 권력분산의 시범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유신정권 못지않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이 정권이 정말 대통령 권한의 비대를 우려해 개헌을 하겠다면, 개헌 후에 이뤄질 정치지형을 미리 보여줄 수 있다. 그런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초법적으로 권한을 남용하고 난 뒤에 그 권한을 줄이겠다면 누가 개헌 동기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또 동의하겠는가.
현 집권층에 의한 개헌이 부당한 이유는 또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이 취했던 ‘저의’가 보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중임제 때문에 3선의 길이 막힌 푸틴이 권력을 연장시킨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총리로서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몇 년 뒤에는 임기가 연장된 대통령직에 권토중래하려 한다. 현 집권세력의 개헌 의도가 그와 무엇이 다를까. 집권세력이 권력을 유지 혹은 재창출하는 방법이 바로 개헌을 통한 이원집정부제 혹은 내각제 도입이 아닐까. 그런 동기에서 추진되는 개헌은 현 집권층의 집권 연장 수단일 수밖에 없다. 지난 2년 반도 지긋지긋한데 집권 연장을 꾀하는 이 시점의 개헌 음모가 어찌 용납될 수 있단 말인가.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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