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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청와대는 방송 ‘쪼인트’를 이렇게 깠다 / 양정철

등록 2010-12-23 20:54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 불방 배후에 청와대 외압이 있다는 논란이 거셉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그리고 청와대 입장에서, 방송은 ‘이브의 사과’와 같은 존재입니다. 대통령의 단호한 방송독립 의지가 아니면, 통상 청와대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은 방송을 손에 넣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끼게 돼 있습니다.

군 출신 대통령 집권 시절에는 공보처의 사무관이나 서기관 정도가 방송사에 전화 한 통으로 ‘이런 내용의 방송 해라’ ‘마라’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청와대는 누구를 사장에 앉힐까 정도만 고민했습니다. 민주화되면서 일선 부처가 방송장악에 나서기 어렵게 되자, 청와대의 은밀한 직접통제 시스템이 가동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 수단은 인사입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장에 앉혔습니다. 부사장이나 본부장, 국장 인사까지 챙겼습니다.

다른 수단은 돈입니다. 방송사 예산이나, 경영실적과 직결되는 광고영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방송장악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광고 배분권을 가진 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압박의 매개로 삼습니다. 공영방송의 경우 예산 관련 부처, 국회(여당), 감사원 등도 동원을 하게 됩니다. 예산확보나 경영실적이 안 좋으면 사내 여론도 악화되고 연임도 어렵습니다. 고위 임원들은 자리보전을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청와대나 권력에 충성을 하게 됩니다. ‘쪼인트’ 발언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또다른 수단은 정책입니다. 방송은 다양한 정책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방통위 등 정책결정은 방송 경영은 물론 때로는 존립 자체를 좌지우지합니다. 현 정부가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을 몰아내려 할 때 수신료 인상이라는 당근을 만지작거리며, KBS 직원들조차 밥그릇에 눈이 멀어 부당한 사퇴압박에 동원되도록 한 것이 예입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장악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신앙처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사에서도 원칙에 어긋나는 부당한 개입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방송 내용을 두고도 늘 다툼(소송, 언론중재 등)이 있었습니다. 첨예한 사안이 생기면 청와대와 방송사 사이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청와대와 방송의 관계가 과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장 선임권을 지닌 이사회의 다수구조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특수관계인을 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주요 간부들은 사내 신망이나 능력보다는 특정한 정치색을 강하게 띤 돌격형 인물들로 채워졌습니다.

2007년 어느날 풍경이 떠오릅니다. 모 방송사 사장 선임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한 사장 후보가 만나자고 집요하게 연락을 했습니다. 청와대가 인사에 끼어들 일이 아니어서 피했습니다. 위계까지 써서 어쩔 수 없이 만났을 때 그가 던진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현재 사장이 방송을 장악 못해 비판적 보도가 많다, 확실히 장악해서 대통령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 특히 노조 하나는 확실히 장악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 그럴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를 밀어 달라, 이런 얘기였습니다. 사실상의 충성맹세이자 은밀한 다짐입니다. “사장 선임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 이사들을 만나 (선거운동) 잘해 보시라”며 돌려보냈지만, 씁쓸했습니다.

그분이 이 정권에서 아주 잘나가고 있고, 명예가 있으니 누구인지 밝히긴 어렵지만, 참여정부 청와대에도 그런 인사들이 줄을 댔는데, 방송장악에 노골적인 이 정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짐작이 갈 겁니다.


현재 벌어지는 행태의 책임은 양쪽 모두에 있습니다. 청와대 눈치를 보면서 방송을 통제하는 권력형 간부들이나, 순치된 내부 직원들 모두 말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방송이 청와대에 장악된 경험은 다음 청와대에서 누가 국정을 운영하든 ‘밀어붙이면 된다’ ‘청와대가 그까짓 방송쯤이야’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주 나쁜 학습효과를 만들어준 셈입니다. 십수년 노력으로 이룬 방송독립의 성과가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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