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한반도의 2010년은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많은 해였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이 저지른 연평도 포격이다. 서해상에서 먼저 강행된 국군의 사격훈련이 북쪽에 빌미를 주었을 수 있다. 정부는 우리 관할 수역에서의 군사훈련이므로 주권적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히 북쪽 군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발해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같으면 정상회담 외에도 국방장관 회담이나 장성급 회담에서 군사문제를 논의했다. 지금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 아래 남북대화가 끊긴 상황이어서 문제다.
군사적 긴장 상태에 대해서는 더 논의할 여백이 없다. 우리가 추슬러야 할 과제는 일상적 삶을 위한 정치와 경제, 교육과 복지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국회에서 여당의 예산안 날치기는 의회정치를 말살하는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여당 의원의 야당 의원에 대한 주먹질은 정치 이전에 인간과 도덕의 붕괴를 절감하게 한다. 더구나 여당의 날치기로 처리된 예산안에서는 영유아 보육지원용 2700여억원과 대학생 융자지원용 1300억원 등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야만과 광기’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그 근원은 무엇인가. 최고 권력자의 치적 세우기 욕심이고, 그 중심에 4대강 개발이 자리잡고 있다. 향후 개헌을 논의하려면 바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 쪽으로 분산시킨다는 전제가 필수일 것이다.
대통령이 집착하는 정권 사업인 4대강 개발 위주로 예산을 짜다 보니 서민복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이다. 25일 밤 방영된 <한국방송> 텔레비전 프로 ‘조수미의 크리스마스 선물’에는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참관하고 있었다. 그가 박수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화면에 잡혔다. 무대의 주인공 조수미씨는 “환경과 생명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나는 그의 말 역시 4대강 파헤치기를 반대하는 메시지로 들었다. 현장의 대통령 부인도 말뜻을 헤아리고 민심 전달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4대강 개발에 대한 국민적 반대는 이제 종교계 내부에까지 깊숙이 번졌다. 불교계는 4대강 말고도 ‘전통사찰의 명상수련’(템플스테이) 지원예산이 잘려나가면서 전면적인 저항으로 가는 분위기다. 그 불교 조계종 본부에 우익 보훈단체가 난입해 겁박했다. 그러지 않아도 조계사는 1980년 전두환 지지 성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신군부에 의해 짓밟혔던 쓰라린 역사를 안고 있다. 조계종은 올해 ‘법난’ 30돌 행사를 열고 당시 군부집단의 만행을 규탄했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집단은 역사의 저주를 받아 궤멸한다는 금언을 명심해야 한다.
4대강 개발은 또한 가톨릭계의 내부 분란을 불러왔다. 정진석 추기경이 “발전적 개발과 파괴적 개발이 있다”고 말해 정권 사업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김인국 신부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은 4대강 개발에 대한 주교단 회의의 반대 결정을 재확인했다. 사제단은 “창조주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못을 박았다. 김 신부는 추기경의 이번 발언에 대해 안중근 의사의 의거 직후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신부가 안 의사를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부인했던 일에 빗대기도 했다. 역사적 오점이 다시 기록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터다.
지난 한해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거나 영향을 준 베스트셀러는 <김대중 자서전>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다. 공통점을 정리한다면 민주주의와 복지공동체일 것이다. 이런 국민정서를 무시하고 반민주적 4대강 개발이나 ‘복지 제로’ 예산을 그대로 집행해서는 안 된다. ‘야만과 광기’에 의한 전리품을 그대로 즐겨서는 안 된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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