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
여섯개의 과일을 모아보자. 사과·배·감·포도·머루·귤 등. 잘 익어서 한자리에 있으면 우리의 입맛을 유혹한다. 과일이 익으려면 제각기 성숙의 길을 가야 한다. 사과가 익은 길이 배가 익은 길과 다르며, 감은 배의 길과 다르다. 머루는 산속에서만 자란다.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 4개국 등 6개국이 과일만큼의 풍성함을 제공하려면 제각기의 역할과 사명을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은 과일로 치면 산속에서만 자라는 머루이다. 다른 과일과는 달리 소외됐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보는 관행을 일단 멈춰보자,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해 보자.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5개국에 의해 빈축과 견제를 받는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는 입장을 만들어 보자.
북한은 한국전쟁 때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한반도를 통일했다고 생각한다. 전쟁 뒤 평화협정도 안 맺었고, 미국은 적대국가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전쟁 직후에 수복정책을 신속히 했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다. 냉정하게 볼 때에 아무 나라나 핵시설을 만들 수 없다. 우리가 포니 자동차에 이어 그랜저를 만들고 휴대전화를 만든 것이 실용주의 노선이었다면,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북한이 핵시설을 만들고 초대형 군사퍼레이드를 과시하는 것도 나름의 실용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서 미완 부분을 추측으로 메워야 하듯 앞으로 있을 북한의 6개국 사이에서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싶다.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전쟁 행위가 끝나지 않았던 데서 생긴 북한의 경제 침체를 회복하기 위해 보상을 해달라. 이런 원조가 수용된다는 조건으로 나라의 격을 중국보다는 높게 만들어야겠다.” 김정일이 아버지 때부터 정치를 담당해 온 경력과 면모에 나는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권 세력들은 툭하면 자기네가 민주화도 이뤘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이 선군정치 속에서도 실용주의 노선을 도입하게 하는 계기를 엿보게 한 햇볕정책을 폐기했다. 야권은 북한의 강경정책 앞에 당황만 하며, 틈새를 엿보아 신라면이라도 보내는 손을 게을리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적으로 규정하는 미국은 현재 3중고에 시달린다. 첫째, 서민경제 파탄이다. 둘째, 군사력 증대에 기반한 패권주의 도모이다. 셋째, 이를 바로잡는 지성의 결핍이다. 미국은 2차대전 뒤 마셜 플랜으로 세계에 활기와 번영을 가져왔다. 미국은 이 원리를 베트남·이라크·아프간·이슬람주의 세력, 그리고 북한에 적용하지 않았다.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공자·맹자가 통치모델을 확립한 중국은 위대한 나라이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모델이 논어·맹자의 모델을 잇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구의 민주주의 모델을 수용하지 않고는 오늘의 중국을 개혁해 나갈 상황이 아니다. 오늘의 중국은 이 점에서 겸손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다시 돈을 벌게 됐다. 이로 인해 2차대전을 발발시킨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상실했다. 일본 정치에서 이때 등단한 정치세력이 장기 집권을 하다가 오늘의 여·야당으로 갈라진 취약한 나라다. 러시아는 고질화된 부패와 폭력 정치에 시달린다. 소련의 공산통치에 저항했던 솔제니친은 과거의 러시아정교도 정치를 주장했을 정도로, 내정 개혁의 필요성이 절박하다.
여섯개의 과일 중 내 집 뜰에 자라는 과일나무는 감과 사과뿐이다. 사과는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온 천지에는 여섯 종류의 과일나무가 모두 있다. 한두 종류의 나무가 부실할 수 있어도 전멸하는 법은 없다. 천지 속의 과일나무들은 서로가 연민의 정을 갖고 보살핌으로 키워나간다. 온 천지의 6개국 중 하나둘이 부실할 수 있다. 긍휼을 베푸는 나라는 생존 과정에서 겪은 고난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은 하나둘의 나라일 것이다. 자기 고집이 세지 않은 나무들은 살아나가는 비법을 우수하고 겸손한 나무로부터 배운다고 생각한다.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
여섯개의 과일 중 내 집 뜰에 자라는 과일나무는 감과 사과뿐이다. 사과는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온 천지에는 여섯 종류의 과일나무가 모두 있다. 한두 종류의 나무가 부실할 수 있어도 전멸하는 법은 없다. 천지 속의 과일나무들은 서로가 연민의 정을 갖고 보살핌으로 키워나간다. 온 천지의 6개국 중 하나둘이 부실할 수 있다. 긍휼을 베푸는 나라는 생존 과정에서 겪은 고난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은 하나둘의 나라일 것이다. 자기 고집이 세지 않은 나무들은 살아나가는 비법을 우수하고 겸손한 나무로부터 배운다고 생각한다.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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