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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사라진 연두회견

등록 2011-01-21 20:09수정 2011-01-21 21:55

최일남 소설가
최일남 소설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언론과 청와대는 정월 중순 전후의 대통령 연두회견 준비를 서둘렀다.

정책 설명 더하기 자가발전의 계기로 다시없을망정 대답이 헛나갔다가는 공연한 평지풍파에 휩싸일까 두려워 어떤 대통령은 몹시 싫어했다. 그래도 판을 엎지는 않았으며, 어떤 대통령은 물실호기의 기세로 당당히 나섰다.

어찌 연두회견뿐이겠는가.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민주정치의 구체적 표현이자 권력과 국민 사이의 소통에 매우 유효한 장치다. 때문에 독단과 불통의 화신처럼 군림했던 이승만 대통령도 미국 문물의 세례를 받은 지도자답게 경무대에서 때때로 기자회견을 했다. 질문 내용은 열흘 전에 서면으로 미리 받았다.

그러나 그 성질 어디 가랴. 1956년 6월 어느 날 드디어 한 사달이 났다. 그날의 대통령은 심기가 무척 불편해 보였다.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조봉암 후보의 득표(210만)와 신익희 후보의 추모표(185만)가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그 조봉암 후보는 역사적으로 엊그제 되살아났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고.)

<평화신문> 소속의 2년 반짜리 풋내기로 회견장 뒷자리에 앉았던 조세형 기자는 어떻든 회견 끝머리에 불쑥 일어나 당돌하게 물었다.

“저어, 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이기붕씨가 국회의장에 재차 당선되기 위해 의원 한 명당 40만환씩 매표공작을 했답니다. 자유당 총재이신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답변해 주십시오.”

그가 점심을 끝내고 마감시간에 대기 위해 부리나케 신문사로 돌아오자 편집국장이 사장 대신 전 사원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조 기자는 사시를 어기고 해서는 안 될 질문을 했으므로 오늘부터 파면에 처한다”고. 원로 언론인들은 익히 아는 일화다.

재작년 여름 세상을 뜬 그는 해직기자 1호인 셈인데, 나중에 <한국일보>로 적을 옮겨 <워싱턴 특파원>이라는 책을 써냈다.


연두회견은 물론 큰일이 생길 적마다 판을 벌이는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선의의 정치쇼에 가깝다. 3000만~5000만을 헤아리는 텔레비전 시청자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실게임을 하듯 서로 묻고 대답하는 제도 아닌 제도가 부럽다.

300명가량의 백악관 출입기자 중 최고령(2010년 당시 90살)이었던 허스트계 신디케이트 기자 헬렌 토머스는 50년이나 드나든 베테랑이었다. 백악관은 그의 이름을 새긴 동판까지 붙여 맨 앞줄 중앙에 전용석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안팎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 대통령은 군사정권조차 거르지 않았던 관례를 버리고 올해도 일방적으로 안보와 경제문제를 호소하는데 그쳤다.

입으로는 늘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효과 직방인 공식 무대를 외면한 채 독주를 일삼는다. 정책이 뒤를 받치지 않는, 오늘 이 소리 내일 저 소리로 사람의 진을 뺀다.

하도 피곤하고 답답하여 그가 기왕에 쓴 여섯권의 책을 사 읽었다. 글 써먹고 사는 자의 도리로 빠짐없이 갖춘 역대 대통령 저서의 보완이다.

<어머니>를 뺀 나머지 다섯권은 모두 ‘도전정신을 생의 원동력으로 삼아’ 성공한 사례가 태반이다.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50대 서울시장, 60대 대통령을 표지에 박은 출판사 선전이 가위 일기가성(一氣呵成)이다. 다른 저작의 책날개에 한결같이 내세운 풀빵장사, 뻥튀기장사, 과일장사는 너무 막강하고 화려한 이력에 연민을 보태는 어법인가 한다.

내 속 짚어 남의 말 하는 감이 없지 않되 나는 그가 지난달에 맞은 고희(古稀)에도 주목한다. 그 나이는 소신과 몽니가 공존하기 쉬운 까닭인데, 남은 임기나마 말을 찔끔찔끔 흘리지 말고 시원스럽게 팍팍 쌍방향 교신을 꾀했으면 참 좋겠다.

최일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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