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탈북해서 서울에 온 지 10년이 된 제자가 페이스북에 “내복만한 효자가 없다”는 글을 올렸다. 요즘 같은 강추위에 어울리는 말이지만, 더운물 나오는 아파트에서 자라난 남한 청소년들은 좀체 생각하기 어려운 말이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는구나. 못다 한 효도, 하지 못하고 있는 효도를 되새기고 있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추위는 10여년 전 두만강가에서도 겪어본 적이 있다.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북한과 접경인 중국의 투먼(도문)을 방문했을 때였다. 조금 넓은 개천 같은 두만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강바람에 언 몸을 녹이려 강변 공원의 작은 매점을 찾아 들어갔다. 석탄난로 불을 쬐고 있으려니 허름한 차림에 기침을 하는 아이가 문가를 기웃거렸다. 꺼리는 주인을 달래 안으로 들였다. 함흥에서 온 아이였다.
중학생처럼 보여도 나이는 18살, 곧 군대에 갈 거라고 했다. 아픈 아버지를 놔두고 그냥 입대할 수가 없어 미국에 사는 고모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일주일 전에 강을 건너왔다고 했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간 고모는 뉴저지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족의 도움으로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급히 돈을 부쳐달라고 해봤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브로커의 집에서도 쫓겨나 길바닥에서 사흘을 헤매다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이다. 오늘 밤에는 다시 두만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열에 뜬 얼굴로 한마디 한마디 어렵게 말하면서 “가족이란 게 이런 건가?” 어른스런 한숨을 몰아쉬었다. 북쪽의 선전과 달리 미국이 잘산다는 것을 알아도 그렇게 속인 북한 정권보다 당장 도와주지 않는 잘사는 가족이 더 원망스러운 듯했다. 잘사는 중국, 더 잘사는 남한에 대해 직접 보고 듣고 알게 되었지만 자신은 바로 병든 부모와 어렵게 사는 ‘가족’ 때문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뜨거운 국밥을 사주며 보니 양말 바닥에 앞뒤로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마침 두 겹 신고 있던 양말을 한 겹 벗어 주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강가에 나서니 여윈 몸매에 엷은 점퍼가 헐렁해 보였다.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어 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것이라 잠시 망설이긴 했다.
칠흑 같은 그 밤에 병든 몸으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남았다면 부모님 곁에 돌아가 인민군에도 입대했을 것이다. 그 아이의 기침 소리를 생각하면 그 밤에 내 두꺼운 파카를 벗어 주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더 심한 추위를 겪고 있을 북쪽의 주민들이 생각난다. 땔감이 없어 나무뿌리를 캐서 나르던 고단한 행렬이 떠오른다. 영양이 부족하면 사소한 감기도 치명적인 병이 될 수 있다. 그들에게 추위는 단순한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이다.
연평도 포격 이후 북쪽에 대해서는 전쟁의 논리만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적십자사를 포함한 모든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과 주민은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 전략과 인도적 지원도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적군의 부상병을 전투 중에도 돌보아주는 일에서 적십자운동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인도주의이다. 민간 차원의 인도주의적 구호사업을 정치적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 그 마음을 왜곡하거나 꺾는 것은 야만이다.
이렇게 무서운 추위를 겪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 이웃이 연탄을 때는 달동네 주민으로부터 내복 한 벌이면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북녘 동포들에게까지 넓어지기를 바란다.
민족의 명절 설날을 계기로 대대적인 ‘내복 보내기 운동’을 제안한다. 혹독한 추위를 겪는 북쪽의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모두 입을 수 있는 내복과 양말을 모아 보내도록 하자.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무관심과 증오에서 벗어나 사랑과 배려를 느끼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민족의 명절 설날을 계기로 대대적인 ‘내복 보내기 운동’을 제안한다. 혹독한 추위를 겪는 북쪽의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모두 입을 수 있는 내복과 양말을 모아 보내도록 하자.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무관심과 증오에서 벗어나 사랑과 배려를 느끼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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