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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방송말] 갈등

등록 2011-01-27 19:38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누리리라.” 고려 말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려 읊은 시로 알려진 ‘하여가’(何如歌)이다. 이 시를 받은 정몽주가 ‘단심가’(丹心歌)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담아 답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멋들어진 시에 뜻을 담아 주고받은 두 사람. 한 명은 훗날 왕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선죽교에서 핏빛 이슬로 사라졌음을 역사는 전하고 있다. 역사의 주인공 둘을 식물에 비유하면, 이방원은 칡, 정몽주는 등나무가 아니었을까.

모두 고려왕조의 신하였지만 이념이 달랐던 두 사람. 콩과의 낙엽 활엽 덩굴성 식물로 뿌리는 같지만 꽃 피우는 것부터 다른 두 식물. 칡꽃은 여름철 하늘을 향해 꼿꼿이 피어나고 등꽃은 봄철 땅에 이끌리듯 줄기에 매달려 꽃을 드리운다. 덩굴 뻗어 오르는 방향도 다르다. 칡은 왼쪽으로 등은 오른쪽으로 휘감아 오른다. 사뭇 다른 ‘삶의 방식’으로 함께 살기 어렵다. 둘이 한데 어우러지면 난잡해진다. 그래서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를 갈등이라 한다.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을 붙여 만든 말이다.

“후보자 사퇴를 둘러싼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고 나섰습니다”(ㅅ방송 앵커멘트), “안가 회동, 당청 갈등 봉합”(ㅎ방송 자막)에 드러난 ‘갈등 봉합’은 어색하다. 갈등은 붙이거나 꿰맬 게 아니라 풀어야 할 일이다. 이 경우엔 ‘갈등 수습(진정)’이라 하는 게 더 좋겠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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