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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경환 칼럼] 지극히 생뚱맞은 개헌논의

등록 2011-01-28 18:16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낙마 사건으로 경직되었던 청와대와 여당 사이가 ‘정상화’되었다고 한다. 당대표의 사죄를 받아들이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개헌’을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역시 의회는 대통령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가 보다. 권력구조뿐만 아니라 기본권 조항에 대해서도 검토해달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다고 여당 원내대표가 부연했다.

청와대의 진의는 알 수 없으나 단순히 흘려보내는 말만은 아닌 듯하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재오 특임장관이 취임하면서부터 내민 화두이기도 했으니. 여태껏 당내의 반응도 시큰둥했는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니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런데 헌법을 바꾸는 일은 간단치 않다. 4대강 사업이나 1년분 예산안의 통과와는 질적으로 다른, 그야말로 나라의 중대사이다. ‘국회가 중심이 되어’ 제대로 논의하라는 행정권의 바람일 뿐 정작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 녹록지 않다. 괜스레 임기 후반에 국정의 난맥상을 자초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현행 헌법은 87년 ‘시민항쟁’의 산물이지만 흠이 없지 않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정할 내용과 방향에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왜, 어떻게, 헌법을 바꾸어야 하는지 국민은 잘 모른다. 열망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없다. 다만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뭔가 국정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정치권의 밥상에 등장하는 단골메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새삼스런 원론이지만 현대헌법은 ‘기본권 조항’과 ‘권력구조’의 양대 요소로 구성된다.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민주헌정 질서에서 양자는 주종(主從),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선다. 전자가 핵심이요, 후자는 부차적인 요소다. 따라서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대통령의 임기가 단임이냐 중임이냐 등속의 권력구조는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건국 이래 모든 개헌은 권력구조에만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기본권은 장식물 정도로 여겼다. 그래서 한국 헌정사를 정치 무뢰한들에게 아홉 차례나 능욕당한 가련한 여인의 일생으로 비유한 시인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기가 옳지 않다. 헌법의 재단장이 이명박 정부의 진정한 관심사였다면 집권 초기에 공론의 장을 만들었어야 했다. 근 3년 전, 국회의 수장에 취임하면서 김형오 의장은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본격적인 연구팀을 가동했다. 그때 노골적인 불쾌감마저 표하면서 제동을 걸었던 청와대가 아닌가? 집권 초부터 차기 문제를 거론하여 ‘김이 새게’ 만든다고.

그러던 청와대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개헌론을 들고 나오는 의도는 무엇일까. 정치판에 미끼를 던져 이전투구, 설왕설래를 부추기면서 국정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흔들려는 ‘레임덕 방지책’일까.


대통령 말씀대로 기본권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비판과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인권위원회를 강제로 축소한 정부에 걸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자는 뜻일까.

현행 헌법도 개헌의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뒷짐지고 관망할 테니 국회더러 나서라고 한다.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가 찬성해야만 국민투표에 회부된다. 국민투표에 앞서 공개적인 여론수렴 과정이 따라야 한다. 국민의 관심은 이미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는가에 쏠려 있는데도 말이다.

해는 서산에 걸려 있는데 갈 길은 아득하다. 가망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밀어붙인다? 그것은 만용 아니면 기망이다. 헌법은 결코 불도저로 밀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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