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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약 판매는 약사에게만’ 이라는 논리

등록 2011-02-06 21:04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실 교수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실 교수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쟁이 뜨겁다. 대통령의 언급으로 시작된 논쟁이 보건복지부와 한나라당, 약사회가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점점 확대되고 있다. 밤에 해열제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에 가야 하기 때문에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일부 일반의약품을 팔아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과 이미 약국이 충분하고 일반의약품의 부작용이 심각해서 약국에서만 판매해야 한다는 복지부와 약사회의 주장이 맞선다. 편의성과 안전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의 논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논의 쟁점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적인 착시현상일 뿐이다.

편의성과 안전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논하려면 다음 세 가지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첫째, 편의성이 확대되면 약의 무분별한 복용이 증가해야 한다. 둘째, 편의성이 확대되면 복약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약화사고 발생률이 증가해야 한다. 셋째,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는 유통관리가 허술하고 차광이나 습도 유지를 할 수 없어 의약품의 변질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물론 이 세 가지 조건은 지금처럼 약국에서만 약을 팔 때와 비교한 결과에 대한 얘기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째, 무분별한 복용이 증가할 것에 대한 우려는 1인이 1회 구입량 제한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전체 복용량은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약국에서 해열제 하나를 사러 갔다가 약사가 이것저것 함께 권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적정 시기에 구입함으로써 얻는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둘째, 약화사고에 대한 우려는 있을 수 있지만, 약국에서 팔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도 일반의약품은 약사의 동의 없이 살 수 있다. 일반의약품 구입 때 약사들이 해주는 복약지도는 복용법 정도이다. 그 정도 복약지도로 약화사고가 막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셋째, 유통의 문제는 오히려 약국에 더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약사들이 의약품 보관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는 모두 바코드를 통해 거래한다. 오히려 약국이 바코드 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 누가 더 유통기한 지난 제품을 잘 골라낼 수 있을지는 상식의 문제다.

이 논의에서 더 심각한 오류는 약사가 안전을 지켜준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의사도 환자의 건강을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도움을 주는 전문직일 뿐이다. 건강은 자신이 지키는 것이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생들은 길을 건널 때 선생님이 함께 건네주지만 조금만 더 자라면 혼자 길 건너기를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해열제 부작용 정도도 인식 못하는 유치원생이 아니다. 더구나 일반의약품은 이미 그 안전이 보장돼 어느 정도 상식만 있으면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약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사고의 위험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편의성과 안전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 입장에서는 편의성도 좋아야 하고 반드시 안전하기도 해야 한다. 편의성과 안전을 저울질하도록 하는 것은 안전을 빌미로 약국의 판매독점권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약사의 전문성은 조제이지, 판매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의약품 판매의 윤리가 식당에서 상한 식자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주인도 이 정도의 윤리의식은 갖고 있다. 조제는 약사만 해야 하나, 판매는 약사 아닌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약사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국민의식도 성장했다. 약국과 약사의 권한만을 지키려 하기보다는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안전이 걱정된다면 올바른 의약품 구입 방법이나 복용법 등을 교육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복지부와 한나라당도 제발 직능단체 눈치 보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국민 중심의 원칙을 지키며 소신 있는 정책 추진을 당부한다.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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