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기
세계무역기구 선임참사관
김의기
세계무역기구 선임참사관
세계무역기구 선임참사관
탈레랑은 프랑스 주교였는데 혁명정부의 외무장관이 됐다. 그는 나폴레옹 집권 후에 다시 외무장관에 기용되는 괴력을 과시했고, 그리고 루이 18세 때도 외무장관을 지냈다. 그가 길을 가고 있는데 거지가 동냥을 했다. ‘저도 살아야 하니까요’, 거지가 그렇게 말하자, 탈레랑은 ‘자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네’라며 그냥 지나갔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 공짜로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탈레랑은 ‘공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본인은 자기의 지위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를 통해 증시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공짜로 돈을 가로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짜를 즐긴다. 고위 공직자들이 아침·점심·저녁을 국민 세금으로 먹는 것도 그 예다. 공짜로 말하자면 현재의 사회제도 자체가 그렇다. 공장 노동자, 지식 노동자들이 100을 생산하면, 기업 소유자들은 노동자들에게 60만 주고 40은 자기들이 공짜로 먹어치운다.
요즈음 보편적 복지냐, 맞춤형 복지냐 하며 논쟁이 한창이다. 이런 복지논쟁은 과거의 복지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맞춤형 복지는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려고 복지와 시장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모멸감을 느낀 수혜자들이 복지를 받기를 거부하는 사태, 정보를 몰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태를 개선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최근의 무상급식 제도는 교실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반성에서 나온 안이어서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1970년대에 복지제도에 결함이 있다며 보수파들이 공격했다. 사람들이 일단 복지혜택을 받기 시작하면 그 굴레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구히 복지 수혜자로 살아가는 점, 복지제도 때문에 미혼모가 양산됐다는 주장 등으로 미국 진보를 몰아붙였다.
무상급식 논쟁도 ‘무상’에 집중됐지만, 사실은 ‘급식’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정부는 식대로 3000원을 지급하는데 식당에서는 2000원을 떼어먹고 1000원짜리 음식만 준다는 등 식사의 질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쿠폰을 주고 만두를 먹든 불고기 백반을 먹든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 좋다. 각 코너에서 경쟁을 하게 되므로 좋은 음식이 공급된다.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는 정부 사업이 효율적인가 하는 것이다. 정부의 ‘한식 세계화’니 ‘국가 브랜드 제고’니 하는 사업들이 무슨 효과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컴퓨터 산업이 새로 생겼을때 미국의 아이비엠은 슈퍼컴퓨터에 컴퓨터의 미래가 있다고 보았고, 일본이나 한국 정부는 미니컴퓨터를 지원했다. 그러나 컴퓨터의 미래는 피시에 있다고 정확하게 본 사람은 하버드대 수학과를 중퇴한 빌 게이츠였다.
따라서 첫째, 정부에 기대를 하지 말고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310조원 정도의 돈을 정부가 쓴다. 이 정부의 지출을 반 이상으로 줄이자고 제안한다. 국방, 치안, 교육, 건강보험 등을 제외한 모든 정부의 사업은 중지된다.
둘째, 보편적 복지가 좋다. 노인들에게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하면 노인들의 지하철 타기 수요가 늘어난다. 무상의료를 실시하면 의료 수요가 급증한다. 셋째,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는 내수 부족에 의한 투자 부진이므로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5000만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원씩 나눠주자고 제안한다. 180조원이 든다. 이 정도면 약간의 조세 증가만으로 가능하다. 이것은 돈을 정부가 사용하지 말고 국민이 직접 쓰자는 것이다. 국민이 컴퓨터를 원하면 컴퓨터를, 자장면을 원하면 자장면을 생산하면 된다. 국민 모두에게 신용카드 한장씩을 주고 여기에다 매달 30만원씩 넣어주게 되면 행정비용도 들지 안는다.
멋지지 않은가. 사실 이렇게 되면 대통령도 별로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여름에 대통령이 기차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는 세상, 어느 시인이 꿈꾸었던 그런 세상 공짜로 쉽게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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