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요즈음 나는 가끔 어린 시절 공부방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였던 잉크가 얼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의 추위는 매서웠다. 올해도 그 강추위가 닥쳐와서 수은주가 얼마 전까지 영하 10도를 오르내렸다. 까마귀도 얼어죽는 강추위 때문에 땅이 얼어붙었다. 이때가 되면 한데에서 작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겨울에는 일손을 놓고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기 마련이다. 이는 농사일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발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 이 강추위 속에서도 땀을 흘리는 곳이 있다. 문화재를 발굴하는 현장들이다. 지금 4대강 사업의 대상지 20여곳에서 문화재의 시굴 내지 발굴 조사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 사례로는 지난 1월 초 경기도 양평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를 방문했을 때 목격한 문화재 시험발굴 현장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이 한겨울에 시굴이 아닌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발굴’이란 미명 아래 문화재 파괴를 자행했던 과오를 기억하고 있다. 지난날 1971년 무령왕릉이 발굴되던 때가 그러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 경주의 안압지를 발굴할 때에도 공사기간에 쫓기어 포클레인이 들어가서 흙을 파내버렸다. 그 결과 내다버린 흙 속에서 문화재들을 다시 수습한 바 있다. 문화재 발굴 과정에서 야만과 무지가 위세를 떨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고서 당시의 식자들은 정부 문화재 당국의 무모함을 한탄했다.
발굴에 관한 교과서를 보면 문화재 발굴에서는 최적의 조건이 준수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문화재 발굴 과정에서는 기온과 습도까지 따진다. 오랫동안 땅에서 잠들었던 문화재들은 영상 18도 전후의 기후와 50% 안팎의 습도가 보장된 환경에서 발굴이 진행될 때 손상 없이 거둘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기 중의 수분도 얼어붙는다는 한겨울에 발굴을 진행한다는 일은 발굴 교과서에 없는 희한한 일이다.
한편,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이나 우리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4대강 발굴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여러차례에 걸쳐서 피력한 바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 천주교의 최고대표기관인 주교회의에서는 4대강 사업에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이들이 4대강 ‘개발’에 반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생태보전에 역행하는 사업이며, 우리 민족에게 미래의 재앙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을 단순히 정부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그 반대론은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진지한 연구와 토론의 결과로 내린 결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려쓰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제 4대강 사업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4대강 공사현장 부근을 한번이라도 걸어보면 그 파괴의 현장에 가슴 아파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은 생태계 파괴를 일삼았던 우리에게 어떤 책임을 추궁하게 될지 궁금하다. 오늘의 우리가 자연을 자연스럽게 누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자연을 올바로 물려주기 위해서 4대강 사업은 지금이라도 재검토해야 한다.
또 우리의 문화유산은 분명 조상들이 남긴 지혜의 증거이다. 공사기간에 맞추기 위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함부로 다루는 현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오늘의 세대는 문화유산을 남겨준 우리 조상들에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문화를 우리와 함께 공동으로 향유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갈 우리 후손들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한겨울에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 발굴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없어져야 할 일이다. 우리 문화를 올바로 지키기 위해서도 한겨울의 발굴은 당장 중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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