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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빅토리아의 죽음에서 배우자 / 최영준

등록 2011-02-16 19:43

최영준
최영준
최영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아버지의 폭행으로 세 살 된 아이가 공사장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채 발견된 사건이 최근 보도되었다. 이 아이가 죽기 전에 그 집에서는 매일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며, 경찰의 탐문수사에 따르면 아이의 온몸에 항상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아이는 쪽방의 싱크대에 내던져져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같은 부모로서 그리고 세 아이의 아빠로서 기사를 읽으며 쓸쓸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 물론 그 아이의 부모가 원망스러우며, 또한 그 부모를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의 책임도 함께 느껴진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 아이가 죽을 때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을까? 이 사건은 영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빅토리아 클림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 1991년에 태어난 이 여자아이는 가난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와 친척의 보호를 받으며 지냈다. 그 이후 보호를 해주던 친척과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끊임없이 학대와 폭행을 당하던 이 아이는 결국 2000년에 이들의 폭행으로 죽고 만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의 이번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그 이후는 다르다. 영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사건에 대해 보건장관과 내무장관이 공동으로 조사에 착수하여 왜 이 아이가 죽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영국의 사회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였는지, 병원과 경찰의 역할에 문제는 없었는지 등 철저한 조사가 진행된다. 또한 이 사건은 아동법을 개정하고 다양한 아동보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우리의 세 살 아이의 죽음과 빅토리아의 죽음은 똑같이 가슴 아프고 처참한 사건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두 나라의 반응은 다른가? 우리 사례에서는 어느 신문에서도 이 아이의 죽음에 대해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논하는 것을 볼 수 없으며, 그 부모가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반면 영국은 이 사건 자체를 정부의 책임으로 간주하고 출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빅토리아 가족의 문제가 아닌 그 아이의 죽음이 우리의 문제, 국가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사상 처음으로 보건부와 내무부가 동시에 사건 조사에 착수하였으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들이 나왔고, 사회 서비스가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 갈 길이 너무도 멂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학대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은 이 사회에 너무 많을 것이며, 앞으로 제2, 제3의 사례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는 첫걸음으로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싶다. 현재 동사무소를 중심으로 사회복지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고 보살피는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의 이런 ‘본연의 역할’이 수행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한 명이 약 856명의 서비스를 감당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복지’에 대한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사회복지사가 기초생활 수급자들의 수급조건 파악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대체할 방법을 시급하게 찾아야 한다. 수급조건이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다른 인력이 충분히 할 수 있다.


또한 동사무소와 경찰, 의료기관, 보육기관, 복지관 등과 연계하여 꾸준히 학대받는 혹은 학대받을 위험에 있는 아이(그리고 노인)들이 있는지 감시하고 이들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건이 또다시 일어났을 때 ‘가슴 아픈 사건’이 아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되어 있는 우리 사회,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과를 하는 그런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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