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송기호 변호사
여기 하나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 그 이름은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이다. 지금 국회에 상륙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통과시켜야 선진화가 되고, 유럽이 우리의 경제영토가 된다고 한다.
이 협정에는 참으로 많은 것이 들어 있다. 골목시장, 여행사, 미용실, 우체국에 근무하는 공익요원, 폐수처리장, 삼겹살, 광우병, 자동차 범퍼, 가습기, 인터넷 등 우리 생활에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영향을 받지 않을 사람은 전방의 군인 정도일까. 그런데 농약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식물보호제품’이라고 부른다.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에서 핵심은 농업이다. 유럽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의 농업강대국이다. 이런 유럽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을 제외한 모든 식품을 무역의 대상으로 하는 대신 높은 관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농민에게 말해왔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바로 그 약속을 전면 폐기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관세율이 21%인 건조포도는 협정 발효 즉시 관세가 없어진다. 관세율 27%인 냉장오이도 마찬가지다. 관세율 30%인 설탕저장처리 생강이나 조제저장처리 양파, 27%인 냉동감자는 5년 뒤에 관세가 없어진다. 냉동돼지갈비살(25%), 냉동돼지다리고기(18%)도 마찬가지다. 복숭아(45%), 단감(45%)도 10년 뒤에는 관세가 없다. 고추, 마늘, 양파, 콩나물 콩 등은 현행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 한-유럽연합 협정 안에 이미 ‘추가적인 관세 철폐’를 위한 검토 일정이 아예 잡혀 있기 때문이다.
한-유럽연합 협정은 대외적으로 한국이 이제 ‘한국 농업이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세계 최강의 농업대국인 미국과 유럽연합에 농업을 개방하면서 어떻게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나 중국, 남미의 나라들에 한국의 농업이 아직은 취약하니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유럽이 한국인의 미래 밥상을 책임질 것이라 기대할 수도 없다. 한-유럽연합 협정에는 유럽이 식량 수출을 함부로 통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조항마저 없어서다.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해 유럽이 식량 수출을 금지하려 할 때 30일 전에만 한국에 통지하면 그만이다.
어떤 이는 자유무역협정으로 자동차를 유럽에 더 팔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럽연합 의회가 자유무역협정 승인의 조건으로 만든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법안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의회가 직접 한국산 자동차 수입 증가로 인한 피해 조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한국에도 없는 제도이다.
또 한국 자동차회사들이 받을 관세 환급에도 손을 댔다. 한국의 수출회사들은 연간 약 3조2000억원을 환급받는다. 그런데 유럽은 자동차를 수출할 때 한국의 자동차회사가, 제3국에서 수입한 자동차 부품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관세를 크게 줄이도록 했다. 게다가 유럽 의회는 애초 두 나라의 합의에 없는 조건을 일방적으로 정했다. 중국산 라디오의 한국 수입 증가율이 그것을 부품으로 사용한 한국산 자동차의 유럽 수출 증가율보다 10% 이상 클 경우엔 관세 환급을 깎도록 만들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국가의 힘도 현저히 줄어든다.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자동차 범퍼의 충격흡수 안전기준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어도, 그런 기준을 유럽연합이 곧 만들 예정인 경우 한국은 ‘자제’해야만 한다. 유럽 차를 ‘리콜’하려면 그 조처를 취하기 전에 ‘객관적이고 논증되며 충분히 자세한’ 설명을 유럽 자동차회사에 통지해야 한다. 자동차를 더 팔기 위해 농업의 뿌리를 흔드는 것은 어리석다. 이것은 선진화가 아니다. 농약을 농약으로 부르지 않는 자유무역협정은 농약회사의 모델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한국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유럽과 자유무역협정을 하지 않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대안이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국가의 힘도 현저히 줄어든다.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자동차 범퍼의 충격흡수 안전기준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어도, 그런 기준을 유럽연합이 곧 만들 예정인 경우 한국은 ‘자제’해야만 한다. 유럽 차를 ‘리콜’하려면 그 조처를 취하기 전에 ‘객관적이고 논증되며 충분히 자세한’ 설명을 유럽 자동차회사에 통지해야 한다. 자동차를 더 팔기 위해 농업의 뿌리를 흔드는 것은 어리석다. 이것은 선진화가 아니다. 농약을 농약으로 부르지 않는 자유무역협정은 농약회사의 모델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한국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유럽과 자유무역협정을 하지 않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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