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마을잔치는 아니라도 가족끼리 조촐한 축하모임은 가졌을 것이다. 졸업이 곧 실업을 의미하는 요즘, 아들이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니 얼마나 대견했을까. 지난해 1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엘시디(LCD)사업부 천안공장 엔지니어로 일한 김주현씨는 입사 1년 만인 올해 1월11일 삼성전자 탕정기숙사 13층에서 몸을 던졌다. 그는 고작 25년을 살았다. ‘또하나의 가족’ 삼성에 입사한 아들의 죽음으로 한 가족의 삶도 산산이 부서졌다. 28일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고인의 49재 날이다.
화학약품을 취급하는 컬러필터 공정을 담당했던 그는 방진복을 입고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셋이 한 방을 쓰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한달에 한번 집에 가기도 힘든 삼성만의 초일류 중노동을 했다. 입사 6개월 만에 다리 피부가 벗겨지는 병에 걸려 자재담당 부서로 이동했다. 이후 그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자살한 날은 2개월 병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날 새벽이었다. 3년을 개근한 고등학교 학적부의 평가대로 ‘명랑하고 친화력이 있으며, 맘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끈기있는’ 한 젊은 노동자가 1년 만에 왜 이런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까?
삼성은 세계 제1의 자동차기업 도요타와 유사하다. 지난해 발간한 <도요타의 어둠>은 연간 1000억엔 이상을 광고에 쏟아붓고 언론보도도 철저히 통제했던 도요타의 진실을 알려줬다. ‘또하나의 가족’ 삼성처럼 ‘사람을 소중히’라고 광고하는 도요타는 정작 노동자가 과로사를 당해도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동차 생산 대수보다 리콜 대수가 더 많다는 사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다다미 넉 장 반짜리의 낡은 기숙사와 높은 자살률. 무엇보다 두 기업의 가장 큰 공통점은 노조가 없거나, 있어도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우울증에 이은 ‘과로자살’로 이어지는 까닭은 평소 상상했던 기업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격차가 일차적일 것이다. 취업선호도 1위 기업인 삼성이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상황에 대한 충격. 4인 이상의 모임을 허락하지 않는 통제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 불만은 내재화되고 모든 것은 홀로 해결해야 한다. 기대 속에 입사한 ‘삼성’과 ‘도요타’를 그만뒀을 때 가족들의 실망을 떠올리며 젊은 노동자들은 죽어간다. 일본에서는 ‘과로자살’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최근 우리나라 대법원도 ‘공무원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은 공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과로자살’에 대한 첫번째 인정이다.
김주현씨의 가족들이 장례도 안 치르고 투쟁하는 이유도 바로 ‘과로자살’이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고인은 과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것이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완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근을 강요받은 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은 앞선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산업재해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이를 입증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고인의 출퇴근 기록과 급여명세서, 삼성전자의 취업규칙 등에서 ‘장시간 노동과 죽음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그런 자료들을 영업기밀이라며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라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잘 열람할 수 있도록 비치해야 하는 취업규칙이 영업비밀이라니.
“국민들이 좀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이건희 회장의 소망처럼 삼성은 정직하게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노조조직률과 그에 반비례하는 가장 높은 자살률의 한국. 높은 노조조직률과 그에 비례하는 사회평등지수의 유럽. 결국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행복한 나라라는 진실을 역사는 입증한다. 고인의 49재를 맞이하여 삼성으로 대표되는 무노조 기업에 반드시 민주노조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고인을 비롯한 억울한 영령들께 드리는 민주노총의 진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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