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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 대통령과 한겨레 발전기금

등록 2005-07-01 19:18수정 2005-07-01 19:18

안재승 편집기획부장
안재승 편집기획부장
노무현 대통령이 가끔 <한겨레>를 고민에 빠뜨린다.

한겨레신문사가 제2 창간 운동의 하나로 벌이고 있는 ‘한겨레 발전기금 모금’에 노 대통령이 1천만원을 내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그동안 받은 대통령 월급에서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해 놓았는데, 그 중 일부라고 한다.

17년 전 6만여명의 국민들이 50억원의 성금을 모아 한겨레를 만들어주었다. 87년 6월 민주항쟁에도 불구하고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군사정권이 연장되자, 국민들은 이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신문 하나 있어야 한다는 바람에서 한겨레를 태어나게 했다.

17년이 지난 현재 신문업계는 위기에 놓여 있다. 한겨레도 어렵다. 한겨레는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국민들이 한겨레를 만들어준 뜻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한번 국민들의 도움을 얻기로 했다. 한겨레가 우리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 공감하는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자원봉사자들과 무의탁 노인들은 “어려운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한겨레가 새롭게 탄생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며 502만원을 내주었다. 어느 회사원은 “창간 때는 대학생이라 돈이 없어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마음의 빚을 갚게 됐다”며 100만원을 보내 왔다. 우리는 이처럼 한겨레를 아끼는 모든 분들의 정성을 소중히 받아들여 더 좋은 신문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발전기금을 내겠다고 했을 때는 받아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수구세력들이 또 생트집을 잡아 악선전을 해댈 게 충분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겨레의 창간 정신에 공감해 창간 때도 성금을 낸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저금을 헐어 발전기금을 내겠다는데, 단지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를 따로 기사화하지는 않고, 발전기금이 어느 정도 모여 기탁자 명단을 신문에 실을 때 노 대통령 이름도 함께 싣기로 했다. 노 대통령 역시 발전기금 모금에 참여한 많은 국민 가운데 한 분일 뿐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기자협회보>가 노 대통령이 발전기금 기탁 뜻을 전한 사실을 알고 6월29일치에 기사를 쓰는 바람에 이 사실이 공개됐고, 다른 언론들도 한겨레신문사에 확인 취재를 해 와, 30일치에 기사를 실을 수밖에 없었다.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3년 1월9일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느닷없이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했다. 한마디 보태지도 빼지고 않고 말 그대로 ‘느닷없었다’. 그날 오전 11시쯤 “오늘 오후에 한겨레신문사에 가고 싶은데, 가능하겠느냐”는 전화를 해온 것이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 한겨레신문사 임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했고, “오겠다는 사람을 막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판단해 대통령 당선자에게 걸맞은 예의를 갖춰 맞이했다. 한 임원이 “한겨레만 방문하면 다른 신문들이 비난하지 않겠느냐”고 농반진반으로 물었더니, 노 대통령은 “‘기계적 균형’은 형식이고, 이런 이해 안되는 형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비난을) 개의치 않는다”고 웃으며 답했다. 당시 이 말을 들으며 ‘노무현답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창간주주이면서 이번에 발전기금까지 내겠다는 노 대통령에게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선일보>에도 감사(?)드린다. 조선일보는 30일치 1면에 ‘노 대통령은 한겨레에 발전기금’ ‘정 통일은 김정일에 와인 선물’이라는 두 가지 기사를 위 아래로 나란히 배치했다. 여기서 그 의도를 문제삼지는 않겠다. 이 신문사는 늘 이런 식으로 신문을 만들어 왔고, 특히 이번엔 ‘숨은 의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탓에, 더는 논할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다. 다만 덕분에 발전기금 모금이 홍보됐다는 사실은 조선일보 쪽에 전해주고 싶다.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고교 동창한테 그날 아침 전화를 받았다. “조선일보 봤는데 발전기금 모금하냐. 나도 거들테니 계좌번호 불러라.” 나만이 아니다. 이런 전화 받은 한겨레 가족들이 여럿 된다.

안재승 편집기획부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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