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하와이안즈에 가고 싶다 / 김영희

등록 2011-03-30 19:34

김영희 국제부장
김영희 국제부장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있는 ‘스파리조트 하와이안즈’는 일본인들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인기있는 레저시설이다. 특히 밤에 나무 냄새 그윽한 에도풍의 고적한 대형 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채 그림자극을 감상하는 맛은 최고다. 도쿄 왕복 버스를 포함해 1박2식에 1만엔 안팎이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연령대별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대형 시설이란 매력에 몇년 전 일본에 살 땐 가끔 가족과 그곳을 찾았다. 2005년 기준으로 연간 이용자가 무려 150만명. 지난 11일 일본 대지진 직전까지 얘기다.

하와이안즈는 원전과 함께 후쿠시마 현대사의 또다른 상징이다. 일본의 고도성장이 시작되던 1950년대 말 당시 후쿠시마현의 산업근대화율은 176%로, 전국 평균 270%에 비해 상당히 뒤처졌다. 그나마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탄광이란 이유로 각광받던 이 지역의 ‘조반탄광’조차 1960년대 석유에 의한 에너지혁명에 밀려 쇠락하게 된다.

재일동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이 만든 <훌라걸즈>(2006)는 당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광부들은 “시대가 변했다고 우리도 변해야 할 필요는 없어. 멋대로 변한 건 시대라고” 하며 인원 감축에 저항하지만, 소녀들은 탄광회사가 새로 여는 하와이안즈 무대에 서기 위해 몰래 훌라춤을 배운다.

이렇게 힘겹게 탄광회사가 ‘하와이’라는 꿈을 파는 레저업체로 변신하던 1960년대, 후쿠시마현은 도쿄전력을 상대로 원전 유치에 나섰다. 지금 가장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1원전 1호기가 1971년 마침내 가동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오늘과 같은 날을 상상이나 했을까?

얼마 전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도호쿠지방의 한 시청자가 보낸 편지가 소개됐다. “힘들더라도 계획정전에 동참해주세요. 후쿠시마 원전의 전력은 도호쿠뿐 아니라 바로 간토(관동) 지방을 위한 것입니다.” 도쿄전력은 수도권과 7개 현의 전력을 독점공급하는 업체. 편지는 사회의 책임 공유를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영국 셀라필드(옛 이름 윈드스케일) 원전단지가 있는 컴브리아 지방을 방문했던 한 전문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1957년 10월 5등급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났던 그곳은 당시 주변 목축지 500㎢에서 생산된 우유가 모두 폐기처분됐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엔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가 내려 양들에 대한 도축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10년 전 방문했을 때도 우유의 방사능 수치가 미미하지만 여전히 남아 아예 10개 지역의 우유를 섞어 버리고 있더라고 전해줬다. 전량 폐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앞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의 합의가 놀라웠다.

4년 전, 가동 30년을 맞아 일시 가동정지에 들어갈 예정이던 고리원전 1호기를 찾은 적이 있다. 기자들은 입으로는 원전사고의 위험성을 캐물으면서도 별 위험을 실감하지 못한 채 부지를 누볐다. 근처에 지역주민들을 위해 지어놓은 으리으리한 문화센터를 보며 “이런 시설이 있어서 좋겠다”고 한마디씩 하기도 했다. 너무 부끄럽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고리),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월성),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영광),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울진)라는 마을 이름과 마을 사람들을,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40%를 소비하는 수도권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는가?

후쿠시마현에서 30년 유기농 재배를 해오던 자부심 강한 농부는 일본 정부의 11개 품목 식용금지 조처가 내려진 다음날 스스로 목을 맸다. 원전의 타살은 곧 사회의 타살이다. 힘들더라도 인류는 대안을 찾아나가야 하고, 그때까지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며 최악의 상황에 대한 경고가 항상 전달되어야 한다. 원전 외엔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이 이 무시무시한 부채감을 덮어버릴 순 없다.


하와이안즈 누리집에 들어가보니 문을 닫았다는 안내문이 떠 있다. 언제 다시 문을 열지 기약할 수도 없다. 밤별들이 쏟아지던 그곳, 하와이안즈에 가고 싶다. d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