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중국 중부 후베이성 셴닝시 퉁산현에서 한참을 더 산으로 들어간 다판진에 스쯔야라고 불리는 험준한 지역이 있다. 2006년 처음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주민들이 호롱불에 의지해 밤을 보냈을 정도로 산업문명과는 거리가 먼 산간벽지 마을이다. 주민들이 호롱불과 결별한 지 2년 만인 2008년 이곳에 원전 공사가 시작됐다. 1000억위안이 넘는 예산을 투자해 중국 내륙지역에 첫 원전을 짓는 대공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성 물질이 전세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지만, 다판진의 원전 공사는 이전과 다름없이 요란하게 계속되고 있다고 중국 주간지 <남방주말>은 전했다. 일본 대지진 닷새 뒤인 3월16일 중국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승인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원전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원전 대약진’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신호는 없다.
1964년 핵폭탄을 개발한 중국이지만, 원전의 역사는 길지 않다. 저장성 친산에서 중국의 첫 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91년 12월15일이었다. 중국에서 가동중인 13기의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은 10.8GW(기가와트)로 중국 전력 수요의 2%도 안 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2006년 확정한 ‘원자력산업 장기발전계획’은 원전의 전력 생산 용량을 2020년까지 80GW, 2030년까지 200GW, 2050년까지 400GW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려면 160여기의 원전이 2050년까지 중국 곳곳에 들어서야 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에만 34기의 원전 계획을 새로 승인했고 이미 26곳에서 공사가 진행중이다.
원전 확대는 ‘필연’이라는 게 중국 정부의 태도다. 전력 생산의 80%를 석탄에 의존하면서 세계 최대 탄광사고 국가, 온실가스 방출 국가가 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불안정한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도 낮추려면 원전만이 해법이라는 것이다. 원전 산업 확대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업계 관계자들과 지방정부의 목소리도 크다. 현재 중국 원전은 전력 수요가 많고 인구가 밀집된 동남부 연해 대도시 주변에 집중돼 있지만, 이제는 내륙의 빈곤한 지역들이 원전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다. 원전 공사가 진행중인 후난성 타오장현은 2010년 한해 세수가 4억위안도 안 되는 낙후지역이지만, 원전이 완공되면 한해 20억위안씩 세수를 얻게 된다고 기대한다.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는 없다. 시민들의 조직된 목소리가 반영될 통로가 없는 중국에서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소금 사재기’ 열풍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중국인들 사이에 핵 불안이 얼마나 큰지를 상징하는 징후였다. 하지만, 원전 확대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시민단체나 반핵운동 등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은 정부와 업계가 결정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년간 중국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돼 왔고 대형 사고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중국이 파키스탄에서 1970년대형 구형 원자로 2기를 건설중인 것은 국제적 논란이 되고 있지만, 중국은 원전 수출 성공 사례로 홍보한다.
중국의 원전 확대 ‘속도전’이 불안해 보일수록, 그것이 한국과 일본이 걸어온 원전 정책의 확대판임을 느끼며 섬뜩해진다. 한국은 21기, 일본은 52기의 원전을 가동하면서 전력의 약 40%씩을 의존하고 있고, 원전을 ‘청정 에너지’로 홍보하면서 확대정책을 추진해 왔다. 국민들이 들은 것은 항상 ‘안전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한곳에서라도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면 모두를 재앙으로 몰아넣게 될 촘촘한 핵그물망이 짜이고 있다. 우리가 계속 침묵한다면 동북아는 수백기의 원자로로 뒤덮일 것이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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