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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술자리에서… 잘하자 / 김선주

등록 2011-04-03 19:50수정 2018-05-11 14:50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미친놈이 술 취한 놈 보고 도망간다’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술이 미친 것보다 더 광기를 부린다는 말이다. 술 먹고 미친 짓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명언이다. 술 좋아하는 그리스 문학 전공 교수에게 들었다.

신정아씨가 1년6개월 실형을 산 것은 너무 가혹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 사회의 관행상 도를 넘는 징벌을 받았다는 느낌은 이번에 신씨가 낸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학위도 박사학위도 없었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그는 기업이나 정치권, 학계, 미술계에 두루 로비가 필요한 일을 야무지게 하고 좋은 기획도 많이 한 유능한 큐레이터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자르고 미술관에서 사표 받고 벌금형 정도로 끝내면 됐을 일이다. 내가 책에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술자리와 술자리 뒤끝의 이야기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학 신입생의 비율도, 판사의 임용 비율도 여자가 많은 세상이 되었다. 좋건 싫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함께 밥 먹고 술 먹고 노래방도 가야 하고 여행도 출장도 같이 가야 한다. 여자는 이런저런 자리가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직업상 젊은 시절부터 40년 넘도록 남자 사회에서 위에서 아래까지 온갖 술자리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신정아씨의 술회를 보면, 딱하고 분별없어 보이고 아니면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술자리가 대가 혹은 광범위한 로비의 자리여서 자신도 그것을 충분히 이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술자리 매너에 가이드라인은 없겠지만, 최소한 다부지고 단호하게 자르면 혹은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면 어떤 사회지도층 인사도 더 이상 지분거리지 않는다. 달리는 택시 속에서 몸을 더듬으면 따귀를 때리거나 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핸드백을 포기하고 차비만 꺼내서 화장실 가는 것처럼 술자리를 떠나야 한다. 술버릇 나쁜 사람이 밤늦게 불러내면 다시는 안 나가야 한다. 대가도 포기해야 한다. 술은 발동이 걸리면 제어가 안 되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으면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신정아씨는 자신이 감옥살이를 한 억울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정운찬 전 총리나 정치인이 된 C기자의 술버릇을 시시콜콜히 썼다. 왜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의 술버릇을 만천하에 공개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황색저널리즘의 희생자라면서 황색저널리즘을 이용하여 무서운 복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지고 설득력도 없고 어떤 의도가 비친다. 자신의 출생 혹은 학위 취득과 관련해서는 모두 비밀 혹은 음모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은 너무 쉽게, 사건과 관련이 없어도 실명으로 꼬치꼬치 썼기 때문이다. 그는 적어도 고 장자연씨나 최근 술자리에 불려나가 봉변을 당한 여배우처럼 확실하게 갑과 을의 관계에서 생계형인 을인 사람은 아니지 않았는가.

흔히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고 하는 말이 진리라면 ‘열 남자 싫어하는 여자도 없다’도 성립된다. 남녀 간의 호의와 그것의 표현은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일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호의와 애정, 혹은 희롱과 구체적인 폭력 같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 도둑놈 취급을 해도 안 되고 어정쩡하게 대처함으로써 빌미를 제공해서도 안 된다. 그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확실하게 당시에 공개해버려야 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고 일해야 하는 세상이다. 드물게 자칫 호의나 애정이 불륜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본인이 책임지고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신정아씨는 책을 통해 억울함과 학위와 관련된 미심쩍은 일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미친놈이 도망간다는 술 취한 놈이 안 되게 우리 모두 술자리에서 잘하자는 교훈은 확실히 주었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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