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민포럼 정책위원장 겸 대변인
4·27 재보선을 앞두고 야권의 ‘연합정치’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빅매치가 될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나 강원도지사 선거는 자연스럽게 여야간에 일대일 구도가 잡혔다. 그러나 경남 김해을과 전남 순천의 경우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임에도 야권 예비후보가 난립 양상이다. 민주당이 순천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김해을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공천하려 하지만 국민참여당이 물러서지 않고 있다.
공천을 주고받는 식의 연합정치는 본래 소선거구제 아래서의 총선이 대통령선거나 광역선거보다 어렵다. 내년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한 야권 연합정치는 그에 앞선 4월 총선이 큰 난관이다.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해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이 많지만, 연합정치를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총선에서 연합정치에 ‘올인’하다 보면 부작용이 많이 생기고 정당들 사이에 갈등이 극대화될 게 뻔하다. 총선은 징검다리 정도로 여겨야지 그것을 대선 승리의 관문이라고 보고 대들다간 연합정치에 대한 실망감만 더 커질 것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은 연합정치를 성공시켜 국민적 기대를 모으고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일을 우선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연합정치는 몇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선거과정에서의 연대, 둘째 선거 이후 정당 간 연정, 셋째 정당과 대중적 정치사회운동의 연합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최근 선진적 정치문화로 각광받는 것은 셋째다. 전통적 정당정치에 비해 새로운 정치기제로 떠올랐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정당 중심의 정치여야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뿐 아니라 유럽도 대중적 정치사회운동이 선거를 비롯한 정치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적 정당 중심 정치는 국민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 대안은 제도권 바깥의 사회운동이었고 거기서 참신한 자원들을 수혈해야 했다.
우리의 정당정치는 양당제가 뿌리내린 영국·미국보다는 다당제가 발전해온 프랑스와 북유럽에 가깝다. 군부통치 시절, 특히 박정희 정권이 인위적으로 양당제를 키우려고 했다. 국회의 비례대표 의석 나누기나 국고지원금 배분에서도 제2당에 비해 제3당이 크게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진보정당이 성장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사조로서 연합정치의 모델은 1990년대 이후 프랑스와 일본이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에서는 영국의 노동당·보수당이나 미국의 민주당·공화당과 같은 중심 정당을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배출한 사회당이 유일하지만, 그 사회당도 1986년 이후 제2기 집권 때는 우파의 핵심 인물인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영입한 연정이었다. 현재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야말로 연합정치를 바탕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그는 하나의 단위 정당이 아니라 ‘대중정치연합’이라는 중도우파 통합당을 이끌어 대선에서 좌파 연합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 중도우파의 연합정치가 잘 안됐다면 사회당 중심의 좌파 연합이 장기집권을 누렸을 것이다.
일본 연합정치는 프랑스와 달리 통합정당이 아니라 단위 정당의 독자성을 유지한 채 합종연횡하는 북유럽식 연정으로 전개됐다. 1993년 총선에서 무려 38년간의 자민당 1당 장기집권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군소 야당들에 의한 연합정치였다. 신당사키가케와 신생당이 사회당·민사당·사민련 등과 8개 정파 연합을 이루었다. 그 후로 자민당에 의한 단독 정권은 한 번의 예외 말고는 성립할 수 없었다.
최근의 프랑스와 일본 정치에서 보듯이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진 선진사회의 새로운 정치기제는 연합정치라 할 수 있다. 특정 이념 진영의 장기집권과 전통적인 정당 중심의 낡은 정치에 외면하는 유권자를 흡인할 새로운 연합정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의 내년 대선도 연합정치라는 새로운 조류가 좌우하게 될 것이 갈수록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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