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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멘토의 반성문 / 유강문

등록 2011-04-13 19:59수정 2011-04-25 11:01

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손진영은 붙었고, 권리세는 떨어졌다. 백새은은 웃었고, 황지환은 울었다. 지난주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결과이다. 굳이 이들의 이름을 꺼내는 건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멘토를 맡은 가수나 작곡가들의 평가에선 누가 앞섰는데, 시청자들의 문자투표에서 순서가 바뀌었다는 식의 설왕설래 말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게임에서 이런 말들이 공감을 구하는 걸 보면, 이 프로그램이 시쳇말로 성공하긴 성공한 모양이다.

사느냐 죽느냐가 갈리는 무대에 멘토가 등장하는 구성은 왠지 비극적이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이들에게 멘토들은 승부의 기술 외에 어떤 지혜를 줄 수 있을까. 프로듀서 방시혁처럼 “이런 태도로는 절대로 가수가 될 수 없어요”라고 꾸짖거나 “왜 웃지? 장난이야? 네가 떨어지든 말든 난 상관없어. 네 인생이니까”라고 호통을 쳐야 하나. 작곡가 김태원처럼 “비장함을 버려야 합니다”라고 염려하거나 “이제부터 여자친구가 생길 겁니다”라고 격려해야 하나.

<위대한 탄생>에서 멘토의 실패는 예정돼 있다. 한 도전자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고 해서 멘토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연예계라는 더 크고 무서운 경쟁의 무대에 도전자를 올려놓았을 뿐이다. 멘토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등만 기억하는 잔혹한 세상에 한 사람을 적응시키고 있다. 사회자가 두 사람을 무대에 세운 뒤 “이 가운데 한 사람은 탈락합니다”라고 예고하고, 긴박한 음향효과가 이어지는 무대의 배우가 된 것이다. “이 자리에 꼭 붙어 있을 거예요” “다음엔 정말 다른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는 도전자들의 다짐이 결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생존경쟁의 논리를 가르치는 멘토의 실패는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의 반성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는 미국 워싱턴에서 학생들과 한 대화에서 “신자유주의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선언했다. 신자유주의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 총재의 입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그의 반성은 지난 20년간 세계경제를 무한경쟁의 틀에 꿰맞춘 ‘워싱턴 컨센서스’도 시대에 뒤처진 개념이라고 말한 데서 절정에 이른다. 한 시대를 규정한 생존의 논리가 그것을 구축한 이의 뒤늦은 반성으로 귀결되는 현실은 끔찍하다.

국제통화기금은 외환위기 당시 한국을 온통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만들었다. “개방하라” “경쟁하라”는 신자유주의의 철칙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어떤 저항도 반발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로는 절대 가수 못 돼요”라는 방시혁의 호통이었고, “당신에겐 화려한 미래가 있어요”라는 김태원의 유혹이었다. 그 가르침에 적응하지 못한 숱한 기업이 문을 닫았고, 경쟁에서 탈락한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앉았다. 그랬던 신자유주의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멘토란 본디 그런 게 아니었다. 멘토라는 말은 애초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친구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에 나선 오디세우스는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친구인 ‘멘토르’(Mentor)에게 맡겼다.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텔레마코스의 친구이자 스승,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돌봤다. 이후 멘토르는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의 동의어로 굳었다. 멘토르도 텔레마코스에게 검술을 가르쳤겠지만, 그를 검투장에 세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평생 한 사람의 멘토를 갈구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 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 식사와 바꾸겠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찾아 끝없이 질문을 던졌던 철학자이다. 살아남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멘토가 진짜 ‘위대한 탄생’을 만든다. 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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