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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오바마의 승부수와 한국 복지담론 / 문진영

등록 2011-04-18 19:49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며칠 전 조지워싱턴대학 연설에서 재정적자를 향후 10년간 4조달러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의료보장과 사회보장, 그리고 국방비의 지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한편, 부자들을 위한 세금감면 조처를 철폐하여 1조달러 이상을 더 걷겠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구상을 전면에 드러낸 이면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어젠다를 선점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일견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불만을 사기에 충분하다. 보수진영에서는 고소득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국방비가 삭감된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에서는 의료보장과 사회복지 서비스가 삭감된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를 간과했을 리 없는 오바마가 왜 이런 위험한 승부수를 띄웠을까?

미국은 전형적으로 양당 구도가 정착된 나라이다. 복지와 세금 문제뿐만 아니라 낙태와 동성애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대부분 보수진영과 진보(자유)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일종의 균형을 유지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치지형에서 집권의 향배는 결국 무당파가 결정하게 되는데, 이번 연설은 바로 이들을 겨냥한 것이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무당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자신의 방법을 선보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위험하다는 증세의 문제를 정면으로 주장하며 무당파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려 갈등하기로는 미국보다 한 수 위인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복지담론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 어젠다의 파괴력을 확인한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복지를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삼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관찰자의 견지에서 보면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이번 연설에서 오바마가 현행 의료보장과 사회보장제도의 기본 골격을 흔들려는 공화당 안에 명백히 거부의사를 밝힌 근거는 미국 사회의 비전이며, 그 비전은 시민으로서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권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사회 공동체가 지향하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복지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순서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자신이 건설하고 싶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이 엇나가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시민의 사회적 권리를 강조하고 이를 기초로 보편적 급여를 강조하는 정치인들도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가 워낙 광범위하여 최저생계비 이하 가구의 70% 이상이 기초적인 생계 보장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둘째, 부유층을 겨냥한 증세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의 종합부동산세처럼 세목을 신설하지 않더라도, 부유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증세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현 정부에서 법인세와 종부세의 세율을 조정하여 약 19조원을 덜 걷었지만, 이 돈은 투자로 순환되지 않고 유보금으로 쌓여 있는 실정이다.

셋째, 진보·보수진영을 막론하고 생활에서 공감대를 확대시킬 수 있는 정책을 꾸준히 개발하고 실천함으로써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민들의 수를 늘려야 한다. 양질의 튼튼한 공공서비스를 누린 경험이 있는 시민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서 세금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책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정치인들의 구호 속에 가려진 내면의 진실을 파악하여, 누가 진정성과 더불어 실력을 갖춘 복지국가의 설계자인지를 가려낼 책임이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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