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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민주주의의 비참과 학생인권조례 / 배경내

등록 2011-04-25 19:57

배경내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집행위원장
배경내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집행위원장
서울에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서명자가 무려 25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반면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은 원래 마감일을 하루 앞둔 25일까지 법적 요건인 8만2000명조차 채우지 못했다. 선거기간과 맞물려 마감일이 2주 연장됐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주민발의 실패가 가져올 파장은 만만치 않다. ‘서울시민 1%도 찬성하지 않는 진보’라는 보수의 조롱거리가 되는 비참은 그렇다 치더라도,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진보의 무능을 탓하는 일은 두렵다. 가장 참담한 것은 청소년들이 진보와 기성세대의 ‘외면’을 지켜보게 될 일이다. 자기에 관한 일인데도 법적 서명 권한이 없어 기성세대의 동참을 호소할 길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진보와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와 환멸 가운데 무엇을 택할 것인지는 주민발의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단지 학생을 위한 조례가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너도나도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을 탓한다. 그러나 무려 12년 동안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질 기회를 봉쇄당하는 학생들의 삶을 바꾸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독일 대통령이 16살 때부터 정당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미국에서 18살 고3 학생이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됐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먼 나라 일이다. 판단하지 않는 것을 마치 중립인 양 오해하는 이들을 대거 양산하는 교육을 내버려두고, 동료 학생이 여럿 죽어나도 서남표 총장의 개혁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우등생들을 만들어내는 교육을 두고 민주주의의 미래는 가능할까.

모든 역사적 변화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여성은 왜 교수대에는 오르면서도 연단에는 오를 수 없는가? 교사는 왜 노동자가 아닌가? 몸의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이 장애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애초 위험하기 짝이 없었던 이런 질문들이 진보를 일궈온 거름이었다. 변화를 꺼리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질문을 품는 이들의 출현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게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자고 한다.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미세혈관을 타고 온몸을 휘돌아 결국 사고를 정지시키도록 만드는 갖가지 규제와도 결별하자고 말한다.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하자마자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촛불’을 떠올린 까닭이다. ‘학생은 공부나 해’, ‘비판적 사고방식은 지금 필요 없다’는 말들이 맹위를 떨치며 침묵과 미성숙을 강요당하는 학교에서 질문이 파릇파릇 피어날 수 없다. 그들은 예민하게 진실을 포착했다.

질문이 봉쇄된 자리에 남은 것은 폭력과 강제의 악순환이다. 지난 24일 <문화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방영된 ‘공포의 집합’ 장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그 대물림 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선배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막무가내 구타를 가하면서도 선배는 그 행동을 ‘매’라고 부른다. 후배들은 선배의 ‘가르침’에 감사하다고 답한다. 극소수 대학과 학과에서만 일어나는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다. 선도활동을 벌이다 후배를 숨지게 한 고교 학생회장 이야기, 운동부 코치의 훈육으로 목숨을 잃은 초등학생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용인되는 폭력은 도처에 깔려 있다. 학생 사이의 폭력에 대해선 대대적 소탕작전을 벌이는 나라에서 폭력의 화수분 노릇을 하고 있는 학교의 폭력에는 그토록 관용적인가.

학생인권조례가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지는 못해도 변화의 포문을 열리란 건 분명하다. 다시 2주간 역전만루홈런의 기회가 찾아왔다. 주민발의 방식이 함부로 길을 나선 것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루어두자. 바로 지금, 아직 서명하지 않은 서울시민은 주민발의 사이트(www.sturightnow.net)에 접속해 참여하면 되고 이미 서명한 사람은 한 사람씩만 더 모으면 된다. 무장 타오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신뢰할 만한 기성세대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배경내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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