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금 스포츠부장
김정행 용인대 총장에게 대학은 ‘왕국’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그에겐 ‘대통령’ ‘오야붕’이란 별명이 따라붙는다. 대학 총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판이하다. 그는 유도선수 출신으로 재단 인맥도 없다. 하지만 1994년부터 총장 5선에 17년간 용인대의 일인자로 군림하고 있다. 일반적인 대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재단도 그의 완력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다.
산천초목이 떨 정도의 절대권력은 용인대 구조에서 나온다. 애초 유도대로 출범했지만 1992년 종합대로 승격했다. 아카데미라는 외형은 정원 확대, 경영·예술 단과대 증설과 교수 임용 확대로 이어지면서 총장 권력을 키워왔다. 물론 유도학과 등 8개 과로 구성된 무도대학이 여전히 용인대의 간판이다. 교수사회에조차 선후배 사이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총장은 주요 보직 관리를 통해 왕국의 성채를 견고히 해왔다.
이 분위기가 지난 24일 <문화방송> ‘시사매거진 2580’이 고발한 ‘공포의 집합’의 본질이다.(방송 화면은 인터넷에서도 내려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분들은 꼭 보기를 권한다.) 경찰은 경호학과 07~11학번 106명 전원을 집합시켜 3시간 동안 몽둥이로 폭행한 6명을 입건했다. 대명천지에 각목이 부러질 정도로 사람을 패고 발길질과 뺨 때리기를 한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어렵게 대학 가서 전과자가 된 이들도 피해자다. 한 학생은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 끝나면 다음날 집합 걱정에 밤잠을 못 잔다”고 했다. 지옥 같은 신입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대에 가고, 돌아와서는 가해자의 처지가 된 이들은 폭력의 고리에 끼인 존재일 뿐이다.
2580 방송 내용엔 이런 말이 나온다. “야! 교수님이 시키면 토 달지 말고 그냥 해!” “누가 교수님한테 선생님이라고 했어, 그놈 나와!” 사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얼차려로 정신이 번쩍 든 학생들은 교수나 조교, 선배의 지시에 즉각즉각 반응할 것이다. 합리고 이성이고 의문이고 설 자리가 없다. 사람이 죽을 지경이 돼도 “그건(폭력은) 우리 대학의 전통”이라고 말하는 교수들이 일부 있다. 바로 이 집단의식이 악순환을 연장시키는 요인이고, 이들을 비호하는 수장이 진짜 주범이다.
용인대의 폭력 불감증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2008년 무도대학 동양무예과의 강장호군이 선배들한테 맞아 숨졌다. 알루미늄 방망이로 25대를 맞아 멍투성이가 된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살려내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폭행에 가담한 학생들만 희생양으로 입건됐다. 학교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우리 사회, 다른 매체가 보도하면 외면하는 소아적인 미디어, 대학 자율을 핑계로 관리에 소극적인 교육당국도 책임이 있다.
용인대는 매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고 한다. 가능한 한 총장과 교수진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한체육회 부회장인 김정행 총장으로선 이번 일이 차기 체육회장의 야망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인지 구타가 이뤄진 실습실 안에 시시티브이를 설치하고, 학생들에게 계도문을 보내고, 대책위원회를 상시적으로 구성한다는 등 표피적인 대응만이 나온다.
자성 없는 왕국은 강력한 외부 충격 없이 깨지지 않는다. 한 지방 체육대학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무도대학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존재가치는 사라졌다”고 정리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헌법학 교수는 “대학이라는 간판을 걸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부끄럽다”고 했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나 시민단체, 교육당국도 이젠 나서야 한다.
무림영화를 보면 도문의 제자가 잘못을 했을 때 간판을 떼는 장면이 나온다. 김정행 총장이 평생 무도인으로 살아왔다면 학생과 학부모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게 무도인의 자세다. 김창금 스포츠부장
kim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