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지난 4·27 재보선에서 정국 향방을 가늠할 지역으로 주목을 받았던 성남 분당을 선거구의 한나라당 후보는 6·25 때 벼랑 끝에 몰린 낙동강 전투 상황에 비유하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쳐 반드시 좌파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호소했으나 너무 비장감이 넘친 탓인지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낙선에도 불구하고 색깔론이 가라앉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앞으로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차원의 이념공세가 더욱 거세질 공산이 크다.
세상사는 일도양단식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물며 역사적 해석은 말할 것도 없다.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이해가 깊어지고 넓어진다. <조선일보> 4월23일치 사회면에는 ‘6·25전쟁 영웅의 훈장, 6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기다’라는 제목의 머리기사가 실렸다. 한국전쟁 때 미국의 은성무공훈장을 3개나 받은 해군 장교 연정의 얘기다. 연정은 인천상륙 직전 유진 클라크 미국 해군 대위가 이끌었던 특공대에 참가해 팔미도 등대의 불을 켜 수로를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첫 은성훈장을 받았다. 51년 3월에는 북한 원산에 흑사병이 창궐했다는 첩보에 따라 현지에 잠입해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하는 공을 세웠다. 그는 2002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선일보 기사는 그의 고등학교 후배가 전쟁기념관에 기증하기 위해 은성문공훈장 등 유품을 갖고 입국한 것을 계기로 쓰여졌다. 기사는 경기중학교와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연정을 미국 정부는 영웅이라고 했지만, 한국에서는 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연정의 무용담이 국내 일부 언론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것은 북한에 대한 미군의 위폐공작과 관련해서다. 한국전쟁 때 일본 주둔 연합군총사령부의 공작기관이 1951년 위폐제조 혐의로 붙잡힌 일본인을 데려다가 북한 위폐를 만들도록 했으나, 더글러스 맥아더 총사령관이 해임된 직후 공작이 중단됐다고 한다. <도쿄신문>이 2009년 8월 북한 위폐의 원판을 한 재일한국인이 보관하고 있으며, 그가 연정의 동생 연상이라고 보도한 것을 국내 언론이 인용해 전한 것이다.
연정은 1973년 <캐넌기관에서의 증언>이라는 책을 일본에서 냈다. 이 책에는 경제교란을 노린 작전 대상국을 ‘모국’이라고 했지 북한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다. 저자 약력에는 1925년 서울 태생으로 주오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44년 학도지원병으로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의 관동군에 배속됐다가 해방을 맞은 것으로 돼 있다. 1949년 캐넌기관을 뜻하는 제트(Z)기관에 들어가 일본, 미국, 한반도에 걸쳐 첩보공작을 했으며, 직업은 전자회사 경영, 도쿄 거주로 써 있다. 기관이 해체된 이후 그의 행적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캐넌기관이란 속칭은 조직을 이끌었던 잭 캐넌 미 육군 소령(나중에 중령으로 승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맥아더 사령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참모2부(G2) 산하에 1949년 설치된 비밀첩보기관으로, 미쓰비시재벌을 창시한 이와사키 가문의 거대한 도쿄 저택을 접수해 본부로 사용했다.
연정은 캐넌기관 참가 경위에 대해 1949년 9월 해군 소령으로 묵호경비사령관 재직중 이승만 대통령의 친전 전보를 받고 경무대로 들어가 극비 지시를 받은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캐넌기관은 전후 일본에서 각종 의혹사건에 관여돼 있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으나 진위는 분명치 않다. 캐넌기관이 모략기관으로 알려진 데는 가지 와타루 납치사건의 여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소설가 가지를 납치해 1년간 안가에 감금해놓고 밀정 노릇을 강요했던 공작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캐넌은 실의에 빠져 미국에 돌아가 반카스트로 공작 등에 관여했다고 한다. 그는 1981년 텍사스의 자택 차고에서 가슴에 두 발의 총탄을 맞은 주검으로 발견됐다. 66살로 인생을 마쳤는데 자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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