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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우리는 사람이다

등록 2011-05-04 19:59수정 2011-05-26 17:30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주말 아침, 집을 나서 평택으로 향하는 아내의 얼굴은 복사꽃보다 환하고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벌써 6주째 계속되는 일이다. 온몸이 악기인 성악가가 자기 몸을 연주에 맞춰 섬세하게 조율하는 것처럼 출발에 앞서 치유자로서 본인의 심리에너지를 조율하기 위한 행동임을 그녀도 알고 나도 안다. 평택에 도착해 그녀가 하는 일은 외견상으론 단순하다. 작은 방에 둘러앉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대상자도 합쳐봐야 열세명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서로 눈 맞추고, 귀 기울이고, 손잡아 주고, 끄덕이고, 분노와 억울함과 고통의 울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게 다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6주째 진행중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그 배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치료의 한 풍경이 그러하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의 압력처럼 극한의 상황이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자살 등으로 사망한 조합원과 가족이 무려 14명이다. 집단치유의 과정은 그런 극한의 압력을 낮춰주는 문제 해결의 한 시작이다.

얼마 전 77일간의 쌍용차 파업 이야기를 다룬 다큐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 디브이디가 발매되었다. 제목 옆에 쓰인 한 문장은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하다. ‘잊지 않겠다고 말해줘.’ 2년 전 파업 때나 지금이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심정이 바로 그렇다.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전쟁 같은 상황을 겪은 게 아니라 전쟁을 겪었다. 물과 가스와 전기가 끊긴 곳에서 헬기가 발사하는 최루액을 뒤집어썼고 고압전기총과 아직도 볼트 자국이 몸에 또렷하게 남아 있을 만큼 강한 볼트총을 맞았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방패에 짓이겨졌고 곤봉과 단련된 발차기로 무차별 구타당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라 믿고 있던 남편과 아빠가 경찰에 쫓겨 사냥감처럼 내몰리는 모습과, 짐승에게 그래도 눈 돌릴 만큼 끔찍한 폭력의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두려움과 생계 문제로 파업 현장을 떠나는 동료들을 인내해야 했고, 파업 중지 관제데모에 동원된 동료들을 향해 악다구니와 눈물의 호소를 해야 했고, 이웃집 동료가 자신을 향해서 새총을 쏘는 광경에 몸서리쳐야 했다. 그런 문제가 하나도 해소되지 못한 채 2년여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방법은 없다.

그들을 향한 치유자 정혜신의 당부는 짠하다. “우리는 투쟁기계가 아니에요. 사람이 투쟁하는 거예요.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을 밖으로 내놔야 해요. 그래야 살아요. 우리는 다 피해자예요. 우리 속에서 가해자를 찾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산단다.

그런 이들에게 ‘경찰 특공대도 다쳤다’거나 ‘빨갱이’라거나 식의 발언들은 무지를 넘어 잔인하다. 2년 전 파업의 현장에서나 지금이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티셔츠에 문신처럼 새겨진 문구는 똑같다. ‘함께 살자.’ 그게 국가 전복 세력이나 빨갱이로 몰릴 만큼 큰 죄인가. 함께 사는 게 문제가 돼서 전복될 국가라면 진작에 무너지는 게 좋다.

요즘 주말마다 평택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심리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가수 박혜경이 주도하는 ‘레몬트리공작단’이라는 희한하게 사랑스러운 자원봉사자들이 쌍용차 노동자의 아이들과 웃고 노래하고 껴안는다. 때론 푸짐하게 음식을 나누고 때론 손잡고 놀이공원으로 나선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쌍용차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이 평택으로 몰려와 축제처럼 힘을 보탠다. 지난주엔 스님과 목사님과 수녀님이 한자리에 모여 쌍용차 노동자들과 다정하게 마음을 포개기도 했다. 고대 출신이 득세하는 세상이라 연대가 쉽지 않다는 우스개가 유행하는 시대에 전방위적인 ‘쌍용차 연대’는 의미있게 느껴진다.

한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쌍용차 연대는 그 어려운 문제, 사람같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축복의 시험장이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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