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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사제의 결혼을 금지한 진짜 이유 / 손준현

등록 2011-05-11 19:57수정 2011-05-11 22:21

손준현 에디터부문장
손준현 에디터부문장
자본주의 한국에 어둠이 내리면 붉은 십자가들이 하나둘 솟는다. 그 저녁 나라에는 교회들이 넘쳐난다. 세속 도시들은 붉은 네온의 십자가들로 인해 마치 거대한 무덤처럼 보인다.

세계 최대의 교회로 불리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애초 교세를 확장해 나갈 때 많은 논란이 있었다. 지나친 현실기복적 성향이 샤머니즘에 가깝다는 비판 등이 그렇다. 하지만 교세가 어느 정도 확장된 뒤, 같은 욕심이 생긴 다른 교회 목사들은 순복음교회의 교리에 대한 비판을 멈추고 오히려 너나없이 따라하기에 바빴다.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 신학이란 참 묘하다. 자기네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리 논리정연해도 이단으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교세를 확장해 교회를 부유하게 하는 데 부합한다면 기독교 이단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사상까지도 끌어다 차용한다.

1970~80년대 붉은 십자가가 걸리는 밤이면 교회들은 ‘심령’의 ‘대부흥’을 부르짖었지만, 한국 사회의 ‘심령’은 출세와 기복을 넘어서는 ‘대부흥’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마침내 오는 31일 모든 직에서 물러난다고 한다. 조 목사가 은퇴한 것은 3년 전이지만, 이번에 <국민일보> 회장직과 발행인은 물론이고, 지부교회를 포함한 전체 교회의 재산을 총괄해온 순복음선교회 이사장직을 내던진 것이다.

초대형 교회의 사유화와 세습이라는 한국 교회의 고질적 문제도 이제 전환점에 섰다. 개신교의 교회 세습은 목사의 결혼과 자녀 출산이 출발점이다. 그런데 가톨릭은 왜 사제들에게 독신을 강요하는가?

사제들의 결혼을 금지한 것은 교회 스스로 정한 것이지 성서에서 금지한 것은 아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독신을 존중하고 장려했지만 사제들도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가톨릭 교회 쪽에서는 당시 독신을 존중하고 장려한 것은 “그만큼 주님의 일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학자 이상성씨는 역사적 사실을 들어 다르게 평가한다. 그는 <추락하는 한국교회>라는 책에서 “중세가 거의 끝나가는 11세기까지도 독신은 강제사항이 아니라 권장사항이었다”고 밝히고 “그 권장사항도 5세기에 들어서야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 뒤에도 사제의 혼인을 금지하지 않았다. 요컨대 혼인 금지 규정의 목적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지 말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생김으로 해서 오는 교권 세습의 방지에 있었다.

5세기 이후 교권 세습 사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11세기에 이르러서는 교권 세습의 폐단이 극심해져 독신 규정을 강제하는 법이 제정됐다. 막강한 교회가 세습권마저 가지면 세속의 국왕들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다. 아마 세속 권력 쪽의 견제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자신의 교구를, 본당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가톨릭 사제들은 1000년 세월 동안 ‘성행위 금지’라는 고행을 강요받았다.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어떤가? 그들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가톨릭이 그렇게 방지하려고 애쓴 교권 세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거나, 다른 큰 교회 목사의 자식과 서로 자리를 바꿔 물려주거나, 자기 교회의 재산을 몇백억이나 따로 떼서 자식을 위해 새 교회를 지어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조용기 목사의 용기있는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조 목사의 은퇴는 한국 교회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뜻한다. 개발독재 시기 앞다퉈 등장했던 초대형 교회들은 한국 사회와 교회의 외적 성장을 상징했다. 교회는 이제 외적 성장을 넘어서는 내적 반성을 통해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는 본연의 임무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다시 보면, 세속 도시에 솟아오른 붉은 십자가들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의 새벽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수천 수만의 촛불이다. 어느새 마음은 그 새벽 나라의 교회로 향하고 있다. 손준현 에디터부문장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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