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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휴대전화 기본요금의 함정/ 정남기

등록 2011-05-25 18:54

정남기 경제부장
정남기 경제부장
서비스 요금에는 기본요금이란 게 있다. 조금 사용하더라도 서비스를 유지·관리하는 데 최소한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액수는 적다. 집에 날아온 가스료 고지서를 보니 기본요금이 1580원이다.

유독 기본요금이 높은 게 있다. 이동전화 요금이다. 표준형 요금제의 기본요금은 어느 회사나 1만2000원이다. 통화를 한번도 안 해도 내는 돈이다. 따라서 본전을 뽑으려면 많이 써야 한다. 많이 쓸수록 초당 통화료가 내려간다. 현재 초당 통화료는 1.8원이다. 표준요금제로 월 50분을 쓰면 기본요금 1만2000원에 통화료 5400원을 더해 1만7400원을 내야 한다. 실제로는 초당 5.8원이다. 100분을 쓰면 3.8원, 200분은 2.8원, 300분은 2.47원, 500분은 2.2원으로 낮아진다. 그러나 전체 요금은 갈수록 불어난다. 300분만 사용해도 4만7400원의 요금이 나온다. 여기에 부가서비스와 부가가치세를 더하면 5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한가지 더 생각할 게 있다. 지금은 온가족이 한대씩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4인 가족이면 가구당 20만원을 넘기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밀의 열쇠는 기본요금에 있다. 통화를 적게 할수록 손해를 보는 기묘한 요금제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낸다는 상식을 완전히 무시한 요금체계다. 이동통신사들은 우리 국민의 통화량이 많아서 통신요금 부담이 크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된 설명이다. 통화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통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도록 비정상적인 요금구조를 만들어놓은 탓이다. 실제로 한 70대 노인의 요금 고지서를 들여다봤다. 4월 한달 동안 26분17초를 사용했다. 초당 1.8원씩 계산하면 2838.6원이 나온다. 그런데도 1만400원의 요금을 냈다. 기본료와 통화료를 합쳐 1만5000여원이 나왔고, 가족간 할인, 인터넷결합 할인을 받아 부과된 요금이다. 많은 할인을 받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턱없이 많은 요금을 냈다. 이런 노인이 족히 수백만명은 될 것이다. 기본료는 통화량이 많지 않은 노인·학생·빈곤층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요술방망이와 같은 장치다.

이동전화 기본료는 다른 서비스 요금들과 비교할 때 정상적인 수준을 몇배나 뛰어넘고 있다. 이용정지 기간 중 3500원의 요금을 받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통신망 유지·관리비는 기껏해야 2000~3000원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확한 내역을 알 길이 없다. 이통사들이 한사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가장 이상한 점은 기본료를 둘러싼 논란 자체다. 낮은 기본료를 바탕으로 한 요금체계는 소비자의 선택권 보호 차원에서 당연히 마련돼야 한다. 현재의 고액 기본료 체계로는 아무리 통신비를 아끼려 해도 아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짓수만 많고 복잡한 현행 할인요금제들은 가입자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금 구조는 간명해야 하고 사용량에 비례해 요금을 낸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가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다. 낮은 기본료는 이통사들에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셈이다.

그럼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이통사들의 대변인처럼 현행 기본료 체계를 옹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통사들이 신규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면 높은 기본료가 불가피하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자동차회사나 전자회사 어느 곳도 투자 재원 마련의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투자가 필요하다면 배당을 줄이거나 증자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신규 투자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구실일 뿐이다.

소비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기본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라는 것뿐이다. 그게 그리 어려운가. 그렇다고 정액요금제나 선불요금제 등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통사들은 매출과 이익이 크게 줄어드니까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움직이는 정부는 왜 그렇게 이상한 요금체계를 감싸고 도는 것인지 궁금하다.

정남기 경제부장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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