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어지럽게 이어지는 정치적 공방을 걷어내고 보면 결론은 간단하다. 권력형 비리 등 우리 사회의 거악(巨惡)을 척결할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수사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내야 어쨌든 일단 겉으로 나타난 모양새는 그렇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논란은 한참 왜곡돼 있다. 중수부 폐지가 곧 거악 척결을 포기하는 것처럼 비치게 하는 검찰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중수부는 우리 사회에 숨겨진 비리와 부패를 밝혀내고 거악에 맞서 왔다”며 부패 수사의 본산인 중수부가 폐지되면 권력형 비리 수사가 어려워질 것임을 내비쳤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반쪽만의 진실이다. 현재 국회 사개특위에서 논의중인 검찰개혁은 ‘중수부를 폐지하되 상설특검 등 대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마치 아무런 대책 없이 중수부를 폐지해 ‘거악을 잠들게 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짓이다.
중수부가 없어지면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차질을 빚을 것처럼 몰아가는 것도 치졸한 행태다. 검찰 일각에서는 저축은행 수사에서 정치인들이 거론되자 국회가 중수부 폐지를 들고나왔다고 비난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엊그제 국회와 검찰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어 피해 보상 요구와 함께 중수부 폐지 반대를 주장했다. 검찰은 ‘대검 중수부는 서민의 희망’이라는 피켓을 보며 흐뭇해했을지 모르지만 국회 사개특위의 논의 과정과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검찰이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유치하다.
결국 중수부 폐지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대검 중수부가 그동안 부패 수사의 본산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그리고 그렇지 못해 중수부를 폐지하게 되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이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법 그럴듯한 논리와 아전인수식의 해석이 난무하지만 모두 곁가지일 뿐이다.
중수부가 부패 수사의 본산으로서 제구실을 했는지를 따지려면 그동안 중수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보면 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중수부가 처음 한 수사는 공기업 비리 수사였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공기업 임원들을 몰아내고 새 정부 인사들을 앉히려는 정권의 의도를 충실히 뒷받침한 수사였다. 검찰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하겠지만 실제 결과는 전 정권 인사의 대거 축출로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박연차 수사’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뒤 이뤄진 씨앤(C&)그룹 수사는 ‘다 죽은 호남기업 뒤지기’라는 비판 속에 별 성과 없이 끝났다. 거악 척결의 상징이라는 대검 중수부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성적이다. 특히 수사하는 사건마다 주로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함으로써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보면 대검 중수부는 ‘부패 수사’의 본산이 아니라 ‘정치 수사’의 본산이라는 오명을 들어도 별 할 말이 없게 됐다. 중수부는 그동안의 ‘정치 수사’를 통해 중수부 폐지의 당위성을 스스로 입증했다.
청와대가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검찰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중수부가 정치 수사의 본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의 개입은 자신들도 언젠가는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부적절한 처사다. 만약 청와대의 지원으로 중수부가 유지된다면 검찰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청와대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청와대와 검찰은 이심전심으로 적당한 타협과 흥정을 해나갈 것임은 불문가지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작은 부패는 처벌하고 커다란 부패는 지나치는’ 중수부를 국민은 원치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수부 존치를 주장하는 것은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된 ‘정치 검찰’과 권력층의 야합일 뿐이다. 수사의 효율성이나 정치적 독립성 측면에서 중수부가 낫다는 주장도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정치 수사의 본산인 중수부의 폐지는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나 특별수사청의 설치를 본격 검토해야 할 때다. 부패 수사의 본산이라는 중수부가 건재해 있는 동안 우리의 국가부패인식지수는 최근 2년째 하락하고 있다.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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