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도제 시스템을 대학교육이 대체한 직종은 훨씬 많을 거다
요즘 젊은이들 먹고살기 힘들겠다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또 한국의 젊은이들 참 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보자.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어 사회에 진입하는 데에 드는 진입비용이 무척 높아졌다.
만화가를 예로 들어보자. 내 아버지가 만화가셨다. 어릴 때 우리 집엔, 만화가 지망생인 문하생, 말하자면 ‘도제식 사원’ 5~8명이 기숙하고 있었다. 10대 후반~20대 중반으로, 도제들 사이에 정확히 서열이 매겨져 있었다. 만화가가 스토리를 짜고 원고지에 인물의 표정과 동작, 배경 그림을 간략하게 스케치해 도제들에게 넘기면 맨 위의 도제가 먼저 펜으로 인물을 그렸다. 그 밑이 배경을 꼼꼼히 그려 넣었고, 그 밑은 까맣게 칠할 부분을 붓질해 메우고…. 마지막으로 맨 밑의 도제가 연필 밑그림을 지우는 지우개질을 했다.
맨 위의 도제가 실력을 쌓아 만화가로 독립해 나갈 땐 스승이 자기 이름을 크레디트에 함께 올렸다. ‘글 갑(기성 만화가), 그림 을(독립해 나가는 도제)’이라고 만화 표지에 써넣어, 신인 작가의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맨 위 도제가 독립해 나가면 그 밑의 도제들이 한 칸씩 승진했다. 도제들은 월급을 받았고, 액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많아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 대다수 만화가들이 이런 식으로 배출돼, ‘누구는 누구의 제자’ 하는 식으로 만화계의 계보도가 그려지기도 했다. 도제들은 노동을 하는 것에 더해 교육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으니 아무래도 월급이 적었을 거고, 함께 기숙하니까 자유롭지도 못했을 거다. 그래도 자기 돈 들 일이 없이 만화가로 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요즘에 만화가가 되는 건 어떤가. 기성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지만 드물다. 옛날처럼 만홧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만화잡지도 사라져서 문하생 월급을 줄 만큼 정기적으로 수입이 생기는 작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교 만화학과를 졸업하거나, 만화학원을 다닌 뒤 만화공모전이나 웹툰을 통해 작가로 데뷔한다. 그러니 만화가로 사회에 진입하는 데에 최소한 대학 등록금, 학원 수강료만큼의 비용이 든다. 기성 작가들을 보면, 그들의 상당수가 만화학과 교수가 됐고 이제 만화학과 학생, 즉 만화가 지망생들이 낸 수업료가 그들의 중요 수입원의 하나가 됐다.
만화가뿐일까. 도제 시스템을 대학교육이 대체한 직종은 훨씬 많을 거다. 물론 그만큼 인력이 전문화되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기도 했겠지만, 어쨌거나 그 직업을 얻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높아졌다. 과거엔 일하며 몸으로 때울 수도 있었는데, 이젠 돈이 없으면 안 된다. 전문직 아닌, 일반 직장인이 되는 건 어떤가. 과거엔 대학 졸업장 하나면 됐는데, 요즘엔 이런저런 스펙 증명서가 첨부된다. 다 돈이 드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 등록금이 올랐다. 그것도 물가상승률의 두 배나 올랐단다.
진입비용만 올랐을까. 재작년부터 청년고용률이 40%로 떨어져 사상 최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란다. 돈은 많이 들고, 취직은 안 되고…. 그뿐인가. 한국의 남자 젊은이들은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을, 가장 적은 돈을 받고, 아니 거의 공짜로 군에 복무해야 한다. 언제 돈 벌어 등록금 내고, 스펙 쌓아 치열한 취업 전선을 뚫고 사회로 진입할까. 부모가 돈 대준다고? 부모 돈은 공짜이기만 할까. 부모에게 의존하는 만큼 간섭받지 않나.
‘반값 등록금’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내 눈엔,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의아해 보인다. 정부는 빨리 답을 마련해야 한다. 어쩌면 등록금은 시작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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