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경제부장
부동산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개인 경험으로 밀어붙인 보금자리
전셋값만 끌어올리고 없던 일로
개인 경험으로 밀어붙인 보금자리
전셋값만 끌어올리고 없던 일로
한때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유행했다. 물론 지금도 많이 회자된다. 실없는 소리는 아니다. 봉투 붙이기에서부터 시장 청소, 풀빵 장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청년 시절엔 서울 공덕동 판자촌에 살면서 인력시장을 전전하기도 했다. 기업에서도 건설·철강·무역·엔지니어링 등 최고경영자로서 안 해본 일이 없다. “내가 해봤다”고 할 만하다.
가장 자신있는 분야는 건설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으로서 절반 이상을 건설에서 보냈다. 건설업체들이 어떻게 엄살을 피우고 어떻게 이익을 감추는지도 알고 있다. 그가 대통령 선거 때 야심차게 보금자리주택을 들고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3년여가 지난 지금, 쾌적한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하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반값 분양을 포기한 지는 오래됐다. 주변 시세의 50~70%에 공급하다가 최근에는 민간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시세의 80~85%에 분양하기로 했다. 가격만 따지자면 보금자리주택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게다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적자 누적으로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민간 주택건설 시장은 보금자리 때문에 찬바람만 불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 신세다.
사실 처음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시세보다 값싼 아파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 시장은 사라지고 분양만 받으면 대박을 치는 투기판이 돼버렸다. 실제로 보금자리 대기수요는 늘었지만 당장 집 사려는 사람은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그뿐 아니다. 보금자리주택 당첨자도 입주 때까지 무주택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 이래저래 전세 수요가 늘면서 전셋값만 크게 올라버렸다. 한쪽을 누르면 한쪽이 튀어나오는 전형적인 풍선효과다.
공급 물량도 형편없다. 현재 공사중인 보금자리주택은 7만~8만가구에 불과하다. 2018년까지 150만가구를 공급한다는 애초 계획과는 한참 동떨어진 수치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와 같은 값싼 토지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다. 애초부터 오래갈 수 없는 시한부 정책이었다.
현재 부동산시장은 최악이다. 매매시장은 얼어붙고, 전셋값은 급등하고 있다. “(건설을) 해봐서 안다”는 이 대통령이 스스로 주택시장을 마비시킨 꼴이다. 물론 책임을 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금융위기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근본 원인으로 근시안적인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택정책은 매매시장 안정이 핵심이다. 기존 주택 가격이 안정되면 분양가도 저절로 안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싸게 분양해도 시간이 지나면 주변 시세에 맞춰 올라간다. 분양받은 사람에게 막대한 차익을 안겨줄 뿐이다. 게다가 분양과 입주 사이에는 2~3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거시경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공급 위주의 보금자리주택이 실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제 전문가도,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었다. 부동산 개발 붐에 기대 아파트로 돈을 번 사업가일 뿐이다. 그럼에도 얄팍한 경험으로 보금자리주택을 밀어붙이려다 진퇴양난의 신세가 됐다. 그냥 ‘해본’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가 주택 정책을 다뤄야 한다는 아픈 교훈만 남긴 셈이다. 이 대통령처럼 맨주먹으로 철강왕이 된 앤드루 카네기의 묘비엔 이렇게 씌어 있다. “자신보다 현명한 자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던 한 인간이 여기에 누워 있다”고.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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