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지난해 11월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안 제정에 관한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저마다 한 맺힌 사연을 안고 있는 사할린 귀환동포들로 회장이 꽉 메워졌지만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제법 모습을 드러냈다. 축사나 인사말을 한 국회의원 가운데는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해 당시 예결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주영 의원, 현재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황우여 의원 등이 차례로 등단해 축사나 인사말을 했다.
쟁쟁한 분들이 바쁜 틈을 내 한마디씩 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사전에 제출한 토론문 원고에 없던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3부 요인의 하나인 국회의장이나 국가예산을 주무르는 예결위원장 등이 나타났으니 귀환동포들의 기대치가 행여 높아졌다가 배신감 증폭으로 바뀌지 않을까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않았다. 하긴 우리 국회에서 짓밟히는 사람이 계속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내가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나간 것은 공청회를 주도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의 열의에 졌기 때문이다. 지역구가 없는 소수당 전국구 출신의 초선 의원이 국회의장과 예결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선배 의원들’을 끌어들였으니 보통 발품을 판 게 아니었을 것이다.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박 의원은 이번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열심히 활약을 했다. 하지만 매우 씁쓰레하다.
박 의원을 비롯한 몇 의원은 조 후보자에게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를 따졌다고 한다. 조 후보자가 북한의 소행을 부정한 것도 아니다. 정부 발표를 믿지만 확신이란 단어를 쓰기를 거부하자 사상 검증을 하듯이 몰아세운 것이다. 여기에 수구언론들이 제기한 색깔론 공세를 보면 수십년 전에 읽었던 소설가 김원일의 작품이 생각난다. 한국전쟁 때의 어느 산간마을에서 캄캄한 밤중에 플래시를 든 사람이 들이닥쳐 어느 편인지를 다그친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갈리는 공포의 상황이 끊이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은 무슨 신앙고백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놈들이 아니라면 그런 짓을 할 놈이 누가 있겠느냐는 식으로 겁박해 합리적 의문 제기 자체를 봉쇄해서는 안 된다. 천안함 폭침은 사실의 면밀한 수집과 엄정한 확인을 거쳐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군사적 사건이라는 점이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군사적 사건에는 대체로 공개되는 정보들이 제한되며 가공될 수도 있다. 일반인들의 정보 접근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을 마치 일제 때의 비국민 취급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정부 발표는 항상 확신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역사는 자주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 왔다. 자유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도 때로는 거짓말을 한다. 급하면 조작까지 한다. 대표적인 게 베트남전 확전을 가져온 1964년의 통킹만 사건이다.
나는 조용환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잘 모른다. 한 5년 전에 사석에서 딱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사석에서 주고받은 얘기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개하기가 저어하지만, 그에게 존경받을 만한 법조인으로 누구를 꼽을 수 있는지 가볍게 물었다. 그러자 주저 없이 이회창이란 이름이 나왔다.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 대통령선거에 나왔고 자유선진당을 만든 정치인 이회창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묻자 대법관 시절 소수의견을 많이 내기도 했지만 판결문을 논리적으로 참 잘 썼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출범에 주요한 구실을 한 조 변호사는 머리에 뿔 달린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는 의문투성이 사안들이 수두룩하다. 박 의원 같은 분은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해 대부분 확신을 갖고 사는지 궁금하다. 확신이 지나치면 광신이 되기도 한다.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판단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면 불관용과 탄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회의 결말은 너무나 끔찍하다.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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