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경제부장
재벌기업이 최근 정치권의 변화를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며칠 전 지인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의 좌회전이 대화 주제로 올랐다. 흥미롭게 지켜보던 터라 이렇게 말했다. “재벌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가 이명박 정부 아래서 법제화될 줄은 몰랐다”고.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비상장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재벌 총수들의 편법상속 수단이란 주장은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학자들, 그리고 <한겨레>가 오래전부터 제기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가 과세 방안을 마련한다니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상대방의 반응이 의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들고나온 것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맞는 듯하다. 누구보다 서민·자영업자·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할 그가 자유무역협정을 들고나온 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수출 대기업에 큰 혜택을 주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철학과 이념을 떠나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게 정치인의 숙명인 듯하다.
어찌 됐든 상전벽해라고 할 만하다. 취임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던 이 대통령은 연일 공정사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판 대상은 주로 재벌기업이다. 한나라당도 가세하고 있다. 민심 이반을 수습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것이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 의도가 무엇이든 한번 떠난 화살은 돌아올 수 없다. 상생과 동반성장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로 자리잡게 됐다.
2007년 대선 주자들의 공통된 화두는 실용이었다. 이 대통령만이 아니다.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실용을 얘기했다. 반면 내년 대통령 선거의 화두는 상생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성장지상론의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의 삶을 도외시하고 성장만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은 정치권 모두의 공감대가 됐다. 재벌기업들이 최근 정치권의 변화를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례를 보자.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단적으로 커지면서 대공황과 전쟁이 터졌고, 이는 각국 보수정권에 대한 민심의 이반으로 나타났다. 2차대전 말기 전쟁 영웅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이 총선에서 노동당에 참패한 것이 좋은 사례다. 국민은 처칠의 용기와 리더십에 환호했지만 전쟁 이후 닥칠 대량실업의 두려움 때문에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후 노동당 정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영국 복지정책의 틀을 마련했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 복지가 시대정신이 되면서 여러번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회경제정책의 틀은 40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지난 40여년 동안 재벌기업들의 성장은 눈부신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힘만으로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금리·환율·세제 등 모든 정책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 샤프의 실효세율은 36.4%다. 반면 삼성전자의 실효세율은 10.5%에 그친다. 각종 조세감면 때문에 중소기업보다도 세금을 적게 낸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고환율로 앉아서 거둬들이는 초과이윤만 연간 수조원이다. 그뿐 아니다.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시장지배력은 어떤가.
여야 정치권의 움직임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일정한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재벌기업들이 계속 기득권에 안주한다면 더 큰 역풍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재벌기업들도 이젠 갑옷과 방패를 벗어던지고 진짜 경쟁력으로 한판 붙어야 할 때다.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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