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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용역의 나라, 안된다

등록 2011-08-15 19:16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가히 용역천하라 할 만한 대한민국,
그래서 정동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비업법 개정법률안’은 반갑다
뒷골목 우스개에 따르면, 교수나 연예인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어떤 일이든 조교나 매니저를 시키면 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용역이란 이름의 직종은 이 둘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막강하고 전방위적이다.

노사분규나 재개발 현장에 용역이 동원되지 않는 곳이 없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곳도 없다. 기업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거리낌 없이 용역들을 동원해 새벽에 해머로 사람이 기거하는 안방 벽을 때려부순다. 가히 용역천하라 할 만하다. 부산의 한진중공업, 아산의 유성기업,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명동 ‘카페 마리’ 등 활동 반경도 전국구다. 용역들이 동원되는 곳엔 무자비한 폭력과 욕설, 공포와 아득함이 세트메뉴처럼 뒤따른다.

온몸에 문신을 한 덩치들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욕설을 퍼부으며 사람들의 머리를 겨냥해 각목을 휘두른다. 젊은 여성의 머리채를 움켜잡아 바닥에 내리꽂은 다음 발로 밟고, 한 대학생의 얼굴을 주먹으로 정확하게 가격한다. 노사분규의 현장에서 용역이 휘두른 쇠파이프나 소화기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광대뼈가 내려앉은 이들도 부지기수다. 한번이라도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왜 ‘용역깡패’란 말이 하나의 고유명사로 통용되는지 소름끼치게 실감할 수 있다.

특수용역팀이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 <제5전선>의 마지막 메시지는 매회 똑같다. 팀원들이 임무 수행 중 체포되거나 사망하면 당국은 이들의 신원을 일체 부인한다는 것이다. 모든 지원을 하겠지만 국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으니 원하는 결과물만 가져다 달라는 것이다.

용역들의 업무 수행 방침이 대체로 그러하다. 철저하게 결과지향적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뿐더러 용역의 의뢰자나 실행자 모두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한쪽은, 내가 직접 안 해서 그렇고 또 한쪽은, 나는 시켜서 한 것뿐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용역들의 행태가 점점 더 악랄해지고, 잔인해지고, 비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의 한 전쟁용역 회사는 앙골라 정부의 돈을 받고 30년 된 내전을 단번에 해결한 뒤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단다. 하지만 그 ‘단번의’ 과정에서 얼마나 무자비한 학살과 몸서리쳐지는 인권유린이 벌어졌을지 짐작해 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용역들이 의뢰자들보다 잔혹해지는 건 그러지 않을 경우 더 경쟁력 있는 집단한테 일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그렇다. 마름들이 지주보다 더 독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용역깡패의 불법적 동원과 행패를 제한하기 위한 ‘경비업법 개정 법률안’은 반갑다. 인권유린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꼭 통과되어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 용역천하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가공권력이 용역의 뒤에 숨어서 보이는 무책임하고 야비한 행태다. 용역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뒤편에서 간보듯 수수방관한다. 그러다 빌미가 생기면 편파적이고 무자비하게 개입한다.

오래전 서경식 선생은 한 시대의 흐름과 관련해 ‘모든 불길한 징조에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해 방죽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한, 홍수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용역의 패악질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과 비겁함은 이미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그 불길한 징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방죽은 반드시 무너진다. 그럴 경우 그 홍수는 수백조원을 들여 배수관거 공사를 한다고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재앙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의 가치보다 폭력적 효율성을 앞세우는 용역의 나라, 절대 안 된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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