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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굿바이, 이 세상 마지막 미소 / 손준현

등록 2011-09-21 19:16

손준현 에디터부문장
손준현 에디터부문장
1991년 부산서 민주당으로 나온
최동원의 구호는 “3당합당 심판”
지금 PK는 ‘합당 이전’ 회귀 조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사진사가 나온다. 그는 왜 혼자 영정사진을 찍었을까. 사진사로 나온 한석규는 카메라 앞에서 쓸쓸히 머리를 쓸어올리거나 안경을 고쳐쓴다. 눈앞에 다가온 죽음과의 일대일 대면. 이 장면은 관객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깊게 ‘인화’돼 있다. 불치병을 앓는 30대 중반의 사진사는 도저히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살짝 미소를 띠었다. 웃을 듯 말 듯, 되레 슬픔을 꾹꾹 누른 웃음, 타작마당을 걸어다니는 늦은 가을 햇살 같은 웃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회한을 숨기지 못한 채, 마지막 인사는 그렇게 ‘애써 웃음 띤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추석을 지나 수도권의 한 납골당에 들렀다. 유명 사찰에서 직영하는 그곳은 죽은 자와 남은 자가 교감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2층의 한 코너에는 30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여성이 모셔져 있었다. 칸칸이 나눠진 그 여성의 사후공간엔 도자기로 된 납골함과 함께 생전의 일기장, 좋아하던 과자, 그리고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그곳은 산 이와 죽은 이의 ‘사랑과 영혼’의 공간이었다. 그 영정사진도 이 세상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영화에서는 장례식에 모인 이들이 단체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 “좀 웃어라, 어디 초상났느냐?”고 말한다. 그러자 굳은 표정들은 엄숙한 추모의 빗장을 풀면서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바야흐로 부음의 계절이다. 폭염의 여름이 지나가자마자 서늘한 가을이 왔다. 오랫동안 투병해온 난치병 환자들과 노환의 어르신들은 주로 환절기에 한 생애를 이 세상에 벗어놓는다. 계절이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 죽음도 피할 수 없다.

최근 ‘불멸의 투수’ 최동원이 세상을 떴다. 영정사진 속의 그도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창립을 주도하다가 소속팀에서 쫓겨난데다, 프로팀 감독을 맡아보지도 못했다. 금테 안경을 쓴 자존심 덩어리 최동원. 홈런을 맞고도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다시 같은 코스에 같은 불같은 직구를 꽂아넣던 최동원. 그의 삶은 ‘직구 인생’이었다.

최동원은 스스로 원하지 않은 은퇴 뒤인 1991년 지방선거에서 여당 민자당의 텃밭 부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했다. 그가 출마한 해는 ‘3당 합당’ 1년여 뒤였다. 1990년 여소야대 정국을 뚫으려는 민정당의 노태우 정부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을 합친 ‘3당 합당’을 통해 선거민심을 거슬렀다. 하지만 노무현 의원 등은 김영삼 총재를 따르지 않고 새로 민주당을 만들었다. 나중의 민주당과 구분지어 이 당을 꼬마민주당이라고 부른다.

출마 당시인 1991년 6월7일치 <동아일보> 19면은 최 후보가 “기성 정치인들이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만은 꼭 새 정치를 이뤄보고 싶다”며 출마했다고 보도했다. 또 같은해 6월14일치 <경향신문> 13면은 “최동원 후보가 3당 합당의 부도덕성을 심판”하기 위해 나왔다고 전했다.

부음의 계절은 다른 한편으로 정치의 계절이 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그로 인해 총선·대선 국면이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1990년 3당 합당에서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이 영남권 보수연합을 이뤘다면, 이번 선거 국면에서는 영남연합의 한 축인 부산·경남의 이탈 조짐이 특징이다. 곧 20여년 만에 3당 합당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지난주엔 상가를 두 곳이나 들렀다. 최동원의 죽음이 보도된 뒤였다. 그리고 불현듯 영정사진을 ‘셀프’로 찍던 한석규의 미소가 생각났다.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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