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경제부장
언제까지 미봉책으로 갈 수는 없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게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게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다
중소 자영업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신용카드다. 고객들이 3000~4000원짜리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를 내밀면 말은 못하고 속앓이만 한다. 높은 수수료율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자영업자는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사은품 챙기고 시간당 300~500원 하는 주차도장까지 받아가면 정말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수료율을 낮추기도 쉽지 않다. 정부 압박으로 신용카드사들이 여러 차례 수수료율을 낮췄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적은 한번도 없다.
신용카드의 원가 구조를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신용카드사는 결제 때마다 부가가치통신망(VAN) 업체에 150원을 지급한다. 인건비 등 각종 경비를 뺀 순수한 거래승인 비용이다. 결제 금액이 1만원이든 10만원이든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원가는 같다. 그러나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르다. 1만원짜리를 사면 1.5%지만 5000원이면 3%, 3000원짜리면 5%가 된다. 소액결제일수록 원가 비율이 높아지는 구조다.
대형마트나 골프장 수수료율이 자영업자보다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번에 큰 금액을 결제하면 상대적으로 거래비용이 적어진다는 당연한 원리다. 실제로 10만원을 대형마트에서 한번에 결제하는 것과 자영업자 매장에서 10번에 걸쳐 결제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자금조달 비용은 같지만 거래비용이 10배로 늘어난다. 자영업자 수수료율 인하는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런 점에서 보면 1만원 이하 소액결제 때 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정부 제안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수수료율 인하가 어려운 현실에서 중소 자영업자를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 불편이 예상된다. 그러나 소비자가 포기해야 할 이익에 비해 자영업자들이 얻게 될 이득이 훨씬 크다면 생각해볼 만한 제도다. 실제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했다고 법적 처벌을 받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10달러 이하 금액은 카드결제를 거부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금액을 거부했을 때는 카드사가 가맹점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정부가 중소 자영업자 대책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6~7년 전에 이런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1만원 이하 신용카드 결제가 많지 않았으니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몇천원짜리 택시요금도 신용카드로 낸다. 갑자기 현금결제를 하라고 하면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가맹점들도 마찬가지다. 돈 들여 리더기를 들여놨는데 현금결제를 허용한다면 어떻게 환영할 수 있겠는가. 옳고 그름을 떠나 정책은 사회 상황에 맞아야 한다. 갑작스런 현금결제 방안에 대한 소비자 반발은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반대 여론이 많자 신용카드사의 손목을 비틀어 수수료율을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과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0.1~0.2%포인트 인하라는 생색내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언제까지 이런 미봉책으로 갈 수는 없다. 신용카드사만 쥐어짠다고 될 일도 아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현금결제 허용 방안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신용카드사, 가맹점, 소비자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게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수많은 장밋빛 청사진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수수료 문제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대선 주자들이 궁금하다. 눈앞에 닥친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공허한 공약들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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