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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FTA 애매합니다~잉” / 유강문

등록 2011-11-02 19:02

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무역협정을 냉전시대 군사조약과
동일하게 보는 미국의 안보전략,
한-미 FTA는 그 아시아판이다
요즘은 <개그콘서트> ‘애정남’이 대세다. 세상을 살다보면 부닥치는 애매모호한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이 남자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판단 유보 혹은 부재 상태에서 굴러가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솔직히 통통함과 뚱뚱함을 가르는 기준을 굳이 정하려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애정남은 이런 시시콜콜한 불확실성을 콕 집어내 경계를 긋는다. “앉았을 때 배가 접히면 통통한 것이고, 섰을 때도 배가 접히면 뚱뚱한 것입니다~잉.”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싼 논쟁도 애매모호하다. 지식검색 사이트에서 이 단어를 치면 질문이 깨알처럼 쏟아진다. 누가 이익을 보는 건가요, 누구 말이 맞는 건가요, 이건 무슨 뜻인가요…. 찬반론자에 따라 이익을 본 쪽과 손해를 본 쪽이 다르고, 낯선 용어가 난무하는 게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모양이다. 예전에 협정을 추진했던 이들이 반대하고, 과거에 협정의 문제를 지적했던 이들이 침묵하는 정치권의 비논리도 혼란을 키운다.

사실 국가간 협상에서 경제적 득실로 승패를 가리기란 무망하다. 경제적 이득이란 협상의 승자로 인정받고 싶은 이들의 욕망이 숫자로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홍보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것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다는 정치적 수사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예기치 않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본질을 꿰뚫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국에 진보정권이 출범한 이후 제기된 한-미 동맹 조정이 보수정권 말기에 가장 완고한 형태로 완결됐음을 의미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정치적 성격은 미국 부시 정부의 안보전략에 분명하게 정리돼 있다. 9·11 사태를 겪은 부시 정부는 2002년 무역협정을 군사정책과 결합하는 새로운 안보전략을 제시한다. “오늘날 무역협정은 냉전시대의 안보조약과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부시 정권에서 통상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졸릭은 2000년 발표한 글에서 클린턴 정부의 무역정책을 “너무 경제적”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그의 생각은 9·11 직후 무역정책을 ‘테러와의 전쟁 수단’으로 규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미국의 이런 전략은 2000년 요르단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중동 전역으로 전개된다. 위로는 시리아, 옆으로는 이라크와 접한 요르단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확실한 동맹으로 포섭한 것이다. 미국은 이어 이집트·바레인·오만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이 지역에 강력한 동맹군을 구축한다. 미국은 이들을 묶어 2013년까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비슷한 중동자유무역협정(MEFTA)을 창설한다는 로드맵까지 내놓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런 전략의 아시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패권을 놓고 중국과 대립하는 미국으로선 동북아에 강력한 동맹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바로 거기에 부합한다. 한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사이에 자유무역협정이 성립하면 미국은 중국의 동쪽과 남쪽을 잇는 동맹의 띠를 얻게 된다. 중국이 경계하는 포위망이 구축되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의회 통과라는 선물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겨준 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에) 정치적으로 더 가치가 있다”고 분석한 것도 이런 우려를 보여준다.

애정남의 개그맨은 ‘사마귀유치원’에서 “참 쉬워요”를 연발한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 참 쉬워요. 먼저 누구나 다 아는 세 개의 대학에 들어가면 돼요”라는 식으로 개인의 의지를 비웃는 구조화된 현실을 풍자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반도 평화구도에 던지는 난제도 그런 반어법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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