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국제부장
“하루 잠 2시간만 줄이면 되잖아.”
“넌 능력의 절반도 안 쏟고 있어.”
내 작은 욕심은 어느 순간 괴물이…
“넌 능력의 절반도 안 쏟고 있어.”
내 작은 욕심은 어느 순간 괴물이…
엄마를 찌르고 8개월 동안 숨겨온 고3 학생 사건이 준 충격만큼이나 마음에 걸린 것은, 중3 때부터 그가 컬러프린터로 성적을 조작했다는 얘기였다. 아이들이 부모의 꾸중을 피하기 위해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는다든가 고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잠시일 뿐이다. 지난 4년 동안 컬러프린터까지 동원해가며 성적표를 고쳐 쓴 지군의 마음은 어땠을까.
중3 정도만 돼도 웬만하면 남자아이들은 엄마를 힘으로 누르고 남는다. 지군은 그러지 않았다. 가출을 하지도 않았다. 홀로 자신을 키우는 엄마의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었을지 모른다. 엄마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만큼이나 애정이 깊었을 것이다. 이웃들 말로는, 큰소리가 오갔어도, 화해한 날 지군은 엄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외식을 가기도 했다.
엄마의 집착과 체벌이 병적 수준에 이르렀던 것은 분명한 듯싶다. 전문가들은 ‘1등 사회’의 병폐와 함께 전업주부의 경우 더 아이들에게 매달린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하지만 병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일하는 엄마들 중 아이들을 혼자 두기 불안하다며 밤늦게까지 학원을 ‘뺑뺑이’ 돌리고, 그도 모자라 밤 11시, 12시에 들어가 아이의 곁을 지킨다는 얘기, 숱하게 들어봤다. 지군의 엄마 스스로도 언제 그런 집착에 치명적으로 중독됐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틈만 나면 아이에게 “하루 8~9시간씩 자는 잠 2시간만 줄이면 되잖아” “넌 아직 능력의 절반도 안 쏟고 있어”라고 말하는 나는 그럼 괜찮은 부모인 걸까?
육아 문제로 친정을 따라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비평준화 지역에 살게 됐는데, 중3인 큰아이의 고교 진학은 요즘 큰 고민거리다. 막상 들여다보니 선택하는 학교에 따라 내신 등급이 하늘과 땅을 오갈 정도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소문난 학교에 가는 것도 싫고, 대학을 잘 보낸다는 학교에 가서 ‘바닥을 까는’ 것도 걱정이다. 멀쩡한 대학 나와 좋을 것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학벌 문제에 비판적인 신문사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내 자식 문제가 되면 ‘모순덩어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아이가 한 학교를 골랐다. 직접 학교설명회를 가보더니 뭔가 마음에 든 게 있나보다. 합격 커트라인이 꽤 높은 곳이었다. 내심 ‘반에서 몇십등하면 어쩌려 그래?’라고 ‘욱’하면서도 “성적 나쁘면 네 스스로 스트레스 받지 않겠니?”라고 상냥히 물었다. 남편은 엄마 기대에 맞추려 아이가 그 학교를 골랐다고 여겼는지 “뭘 복잡하게 따지냐? 빡빡하지 않은 학교 가”라고 냅다 한마디다. 그때, 아이의 답은 명쾌했다. “엄마 아빠가 스트레스 안 주면 돼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며 이렇게 선을 넘다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이런 말조차 안 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와의 대화가 겉돌고, 아이가 못마땅해하면서도 잘 짜인 부모의 프레임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일 때 우리의 착각은 시작된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 탓”이라고 비판하면서 내 마음속 작은 욕심이 어느 순간 ‘괴물’이 되어, 구조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엔 눈감는다.
지군은 여기에 이르기까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의 담임선생님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사회부 기자에게 문자를 남겼다고 한다. “미안합니다… 가슴이 무너지게 막막한 부모 마음이라 헤아려주시고 인터뷰 거절하는 거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불쌍한 아이입니다. <한겨레>에서만이라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천박한 기사 나지 않도록 신경 써주십시오! 죄송하지만 전화는 받지 않겠습니다….” 부모로서, 이 사회의 성인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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