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달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인류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인류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다
2008년 10월 미국의 게임개발자 리처드 개리엇은 소유스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3500만달러라는 거액이 그의 호사스런 우주관광에 동행했다. 지구로 돌아온 개리엇은 얼마 뒤 달에 방치된 소련의 탐사선 하나를 사들였다. 소련이 1960년대 말 미국과 치열한 달 탐사 경쟁을 벌일 무렵에 쏘아올렸던 것 가운데 하나였다. 탐사선은 그야말로 고철덩어리에 불과했지만 그의 셈법은 남달랐다. 달에 있는 탐사선을 사두면 언젠가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개리엇의 기행은 달에 대한 투기를 퍼뜨렸다. 인터넷에선 달을 사고파는 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달을 경매에 부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투기꾼들이 꼬이니 달에서도 땅값이 형성됐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선 에이커당 18~24달러가 책정됐다. 달 지명에서 늪이나 계곡이 아닌, 산이나 바다로 표기된 곳에는 30달러가 넘는 가격표가 붙었다. 가장 비싼 땅은 1969년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고요의 바다’였다. 인류의 첫발자국이 새겨진 이 땅에는 37.5달러라는 값이 매겨졌다.
‘고요의 바다’는 최근엔 미국 정부까지 나서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는 곳이 됐다.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은 아폴로가 착륙한 지점과 달에 남겨둔 기기가 조만간 손상될 염려가 있다며 이들 ‘미국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지침을 만들었다.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지점으로부터 반경 75m, 아폴로 17호가 착륙한 지점으로부터 반경 225m 구역에는 다른 나라의 출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두 지점의 상공 반경 2㎞ 구역에는 비행도 금지했다. 달에 미국령을 선포한 것이나 진배없다.
개리엇의 투자든 나사의 지침이든 현재로선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 인류는 아직 우주공간의 소유권을 규정하는 정교한 법률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1967년 국제연합이 제정한 ‘우주조약’이 있지만, 실제로 적용하기엔 허점이 많다. 이 조약에 따르면 어떤 나라도 우주공간에 대해 주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구속력은 없다. 더욱이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기업의 소유권에 대해선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당시 인류의 상상력이 그런 상황까진 미치지 못했나 싶다.
이런 엉성함은 달의 소유권 문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979년 국제연합이 제정한 ‘달 조약’을 보면 달은 인류 공동의 유산이고, 그 어떤 국가도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에 서명하지 않았다. 나사도, 개리엇도 이 조약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달 조약에 서명한 나라는 현재 칠레, 레바논, 필리핀 등 20여곳뿐이다. 이들 가운데 우주선을 쏘아올릴 능력을 가진 곳은 프랑스가 유일하다. 달의 독점적 개발과 배타적 이용을 제약할 수 있는 상황을 강대국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을 영토로 분할하려는 시도는 지구를 시장으로 구획하려는 것과 유사하다. 시장은 소유권을 신성시하고, 이를 침해하는 요소를 배제하는 데서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이런 논리에서 발전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경제를 전쟁이라는 수사로 표현하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것으로 선전하는 논리가 횡행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달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인류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파 앤드 어웨이>라는 영화에는 서부개척시대 땅따먹기 시합에 나서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개척자들은 밤을 새워 달려가 자신의 땅에 깃발을 꽂았다. 인디언들은 이들의 탐욕에 가차없이 밀려났다. 달의 소유권이 인정된다면 지난 5000년 동안 지구에서 펼쳐진 인류의 땅따먹기 경쟁과 그에 따른 골치 아픈 문제들도 고스란히 우주로 옮아가게 될 것이다. 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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