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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남북관계 개선할 마지막 기회

등록 2011-12-28 19:37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조문 정국’이 어제 영결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앞으로 세계 각국은 새로 들어선 ‘김정은 체제’와의 관계 정립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이다. 직접 이해당사자인 우리로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꽉 막힌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남북관계에 족쇄를 채워왔던 이명박 정부로서는 이를 푸는 것도 쉬워 보이진 않는다. 지지 세력인 보수층들의 반발뿐 아니라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는 데 따른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새로 들어선 김정은 체제의 인정 여부다. 정부는 김정일 사망에 대해 사실상 조의 표명을 했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힘으로써 북한 주민과 정권을 분리시켰다. 이는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문제는 사안의 성격상 어떤 선택을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다. 북한에 무슨 정권이 들어설 것인지는 우리의 의지가 반영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우리가 인정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실제 정권으로서 작동하게 된다. 현실로 존재하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어떤 대화와 협력도 불가능하다. 김정은 체제 인정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순간 정부는 스스로 헤어나기 힘든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 ‘비핵·개방·3000’(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을 대북정책 기조로 내걸고 북한 체제 변화를 시도했지만 남는 건 남북관계 파탄뿐이었다. 그런데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다간 임기 말까지 지금 같은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정은의 나이가 20대밖에 안 돼 곧 무너질 것이라는 식의 ‘북한 붕괴론’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저 하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남북관계에 최대 걸림돌인 천안함·연평도 사건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두 사건의 성격상 분리해서 대응하는 게 낫다고 본다. 연평도 사건은 명백하게 북한이 우리 영토 안에 포격을 가해 우리 군인과 주민이 희생된 참사다. 북한도 포격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 만큼 북한의 사과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다.

천안함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46명이나 되는 우리 군인이 희생된 참혹한 사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싸고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북한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도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또 애꿎은 사병들만 희생되고 관련된 지휘관들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뭔가 더 밝혀져야 할 ‘미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계속 북한의 사과를 고집한다면 남북 대화의 실마리를 풀기 어렵다. 비록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못박기는 했지만 이를 현명하게 에둘러가는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당분간 이를 거론하지 않고 묻어두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남북관계 개선에 상징적인 사안이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사과와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을 북한에 요구하며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다. 우리 정부로서는 당연한 조처다. 북한도 현대그룹을 통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였다. 당국 간 사과나 안전 보장 약속은 아니었지만 우리 정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생각이 있었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계속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금강산 관광을 통해 현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계산도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붕괴론’에 입각해 북한의 목줄을 죄겠다는 의도다. 이제는 그런 인식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협력과 대화를 사실상 모두 중단시켰다. 이제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김정일 사망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마지막 기회다.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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