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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 / 안재승

등록 2012-01-18 19:14

안재승 정치·사회 에디터
안재승 정치·사회 에디터
운동권 대학생이냐 아니냐를 떠나
디도스공격을 단호히 비판한다
어물쩍 표만 얻겠다면 ‘어림없다’
지난 9일치 <한겨레> 1면에 ‘민주주의의 퇴보를 걱정하는 서울대인 3069명’ 명의로 의견광고가 실렸다. 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대한 디도스 공격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 이 광고는 자신을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는 이하결(화학생물공학부 2)씨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그는 “친구들과 얘기해보니 디도스 사태는 4·19 혁명을 촉발한 3·15 부정선거와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방학중이라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시국선언과 광고 게재에 필요한 모금을 제안했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지난해 12월 초 실시된 총학생회 선거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돼 현재 총학생회가 없다.

이른바 ‘비권’(비운동권)으로 분류되는 건국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중앙대 등 12개 대학 총학생회도 지난 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시국선언을 했다. 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선거권이 훼손됐고 민주주의와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 디도스 사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특검을 구성하고 연루된 정치인과 정치조직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찬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요즘 대학생들이 정치·사회문제에 무관심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회 현안과 관련해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것은 총학의 중요한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학생운동을 이끌어온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도 “배후를 밝히는 건 신의 영역”이라는 검찰의 수사 발표가 있은 뒤인 12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이들은 “검찰이 경찰의 허술한 수사를 비웃듯 수사를 전개하더니 결국 밝혀낸 것은 ‘공씨 친구 김씨’라는 범죄자 1인 추가였다. 한나라당은 자기 당의 인물이 저지른 범죄이며 끊임없이 연관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군소리 없이 특검이 진행되도록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은 구체적인 정치행위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 등은 4·11 총선을 겨냥해 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특정 장소에 부재자투표소를 두려면 현행 선거법상 2000명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김삼열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많은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해 자신의 의사를 사회 현안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대련도 2월 초 차기 의장과 집행부가 구성되면 대학생정치참여운동본부를 만들 예정이다. 김효진 한대련 정책위원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낮았던 대학생들의 투표율을 높여 사회적 발언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디도스 사태와 관련한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이처럼 한결같고 단호하다. 근래 보기 드문 이례적인 일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를 위협한 중대 범죄행위인 만큼 배후를 포함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대학생들의 이런 분노와 결의에 견줘볼 때 정치권의 모습은 한가해 보인다. 민주통합당의 특별검사 제안을 한나라당도 수용하겠다고 해놓고, 특검법안의 문구와 조사 대상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면서 특검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진정성보다 정치적 계산이 앞서는 탓일 게다.

안철수 현상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여야 모두 젊은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대 비상대책위원이나 청년비례대표제 같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그들의 마음을 잡겠다는 욕심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로 들린다.

안재승 정치·사회 에디터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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