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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학교폭력과 일그러진 판결을 보고 / 양승규

등록 2012-01-30 20:18

양승규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
양승규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
학교폭력이 심각하다. 교육환경의 황폐에서 온 것이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고 사회윤리는 바닥을 헤맨다. 교육계까지 부패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비리 관련자들 편에 서서 비리사학을 정상화하자는 것은 폭력을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나의 실증적 예를 들어보자.

학교법인 대양학원 설립자인 부모는 그 아들에게 이사장 자리를 내주고 학교경영을 맡겼다. 그러나 그 아들은 교비에 손을 대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나무라는 부모에게 행패를 부렸고, 교육부의 감사로 비리가 밝혀져 임시이사 체제로 넘겼다. 이후 학원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그 아들은 설립자인 부모에게 책임을 돌리고, 부모의 가슴에 상처를 입혔다. 이에 그 설립자인 부모는 그 아들을 ‘패륜아’라고 대통령께 호소도 했다.

이른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그 어머니의 울분 섞인 증언이 이어지고, 아버지가 그 아들은 당신들이 세운 학교나 관련 법인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도록 하라고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과부 장관은 설립자의 기본권보다 종전 이사의 권리행사를 우선적으로 존중한다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위헌적인 결정에 따라 그 아들이 추천한 5명을 이사로 선임했다. 이는 대법원 판결(2007년 5월17일 선고 2006다19054 판결) 등에도 어긋나고, 그 자식은 명예이사장으로 행세하면서 학원을 흔들고 있다. 윤리를 존중해야 할 교육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가?

설립자인 부모는 교과부 장관을 상대로 5명의 이사 선임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설립자에게는 사학 설립의 자유만이 있고, 운영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로, 그 아들의 신뢰관계가 상실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2011년 3월4일 선고), 서울고등법원은 ‘설립자라는 이유만으로 학교법인의 자주성을 대변할 수 없다’는 궤변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역시 설립자인 어머니가 올린 항소를 당사자 적격이 없다고 각하했다(2011년 11월30일 선고). 이는 선량한 사회질서에도 어긋난다.

나는 이 판결을 보고 그 법리는 고사하고 법관의 윤리와 정의감이 무엇인가, 법학 교수로 일생을 바쳐온 삶이 부끄럽고, 법원까지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가늠하기 힘들다. 하기야 일부 법관이나 검사가 돈에 팔리고 있는 현상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돈 많이 드는 변호사들이 움직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풍문이기를 빌고 상고심에서는 바로잡아지지 않겠는가 희망을 건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적인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설립자에게 사립학교 설립 및 운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요체라 선언하고, 학교법인의 정상화는 임시이사의 선임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정지되어 있던 설립자 및 학교법인의 사립학교 설립 및 운영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을 본질로 하며, 또 설립자의 기본권은 입법권·행정권·사법권 등을 기속하는 대국가적 효력과 헌법의 기본적 결단인 객관적 가치질서로서 대사인적 효력이 있다고 엄중하게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0년 4월22일 선고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설립자는 위 대법원 판례에 근거하여 학교법인 정상화 과정에서 헌법에 보장된 설립자의 기본권에 따라 권한이 있다는 취지의 상고이유서를 지난 25일 대법원에 제출하였다.

아무리 사회윤리가 타락하였다 하더라도 최소한 교육의 현장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되고 윤리적으로 비난받는 사람이 관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학교교육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부모 덕으로 외국유학까지 마치고 많은 재산까지 물려받은 아들이 그 부모를 배신하고 설립자인 부모가 반대해도 권력에 줄을 대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 교과부 장관의 처분을 받아들이는 법원이 이 나라 사법부의 위상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일그러진 판결은 학교폭력을 부추기고, 이 나라를 나락으로 내모는 짓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법은 정의의 척도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이것이 법조인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가정윤리를 저버리고 패륜적인 사람이 학교법인에 관여하여 뒤흔드는 현상을 방임하는 것은 법과 상식 그리고 정의에 어긋나는 중대한 죄악이고, 교육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정의가 이긴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법관의 윤리의식이 높아지기를 기원한다. 양승규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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