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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생명의 의지들이 연대의 길을 걷다 / 오창은

등록 2012-02-01 20:45

오창은 문학평론가·한국작가회의 정책위원장
오창은 문학평론가·한국작가회의 정책위원장
한국작가회의 500여명의 작가들이
임진각에서 제주 강정마을까지
25박26일 동안 527㎞를 걸었다
한국 문학운동사상 큰 사건이었다
평화는 생명을 향한 무한한 신뢰가 지속되는 상태이다. 정의의 실현을 위한 노력의 결실이 평화이고, 생명이 상호공존의 원리 속에서 균형을 이룬 것이 바로 평화이다. 결코 전쟁의 반대가 평화일 수는 없다.

제주도 강정마을이 평화와 생명의 권리를 침해당해 위태롭다. 한국 정부는 2005년 1월에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고도, 2007년 6월에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내렸다. 제주도가 한반도 안보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세계 평화의 둥지가 되기 위해서는 결단코 피해야 할 정책 판단이었다.

이전의 제주는 역사적 아픔이 곳곳에 새겨져 있는 분쟁의 장소였다. 몽골의 100년 지배의 흔적인 성터들, 일본 식민지 지배의 잔해인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4·3민중항쟁의 상처인 학살의 현장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현재의 제주는 이제 이 분쟁의 역사를 과거화하는 곳이어야 한다. 제주는, 역사적 현장이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평화와 생명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평화의 둥지’여야 한다. 이곳에 또다시 분쟁의 씨앗인 해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 된다.

작가들은 평화와 생명을 옹호하는 연대의 손짓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한국작가회의 작가들은 지난 12월26일 임진각을 출발해 1월20일 제주 강정마을까지 25박26일 동안 장장 527㎞를 걸었다. 그 행사가 ‘글발글발 평화릴레이’였다. 이 걷기 행사는 한국 문학운동 역사상 처음 있는 큰 사건이었다. 전국 500여명의 작가와 시민이 참여했고, 한번도 끊김없이 작가들은 하루 20㎞ 이상씩 ‘1번 국도’에 발자국을 새겼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그야말로 ‘발로 쓴 글의 연대’를 일궈냈으며, ‘평화운동에 새로운 장을 연 새로운 형태의 문인 실천운동’을 수행한 것이다.

한국작가회의 작가들은 제주 강정마을을 통해 평화와 생명운동의 과제를 새롭게 설정하며, 한국 시민사회와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 과제를 공유하려 한다.

첫째, 평화운동은 생명권과 인권을 옹호하는 근본적인 운동이다. 평화와 생명을 위한 문학적 언어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며, 시민사회와 공유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렇기에, 제주 강정마을에 분쟁의 씨앗인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둘째, 생태환경적 차원에서 뭇 생명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여야 한다. 이제 평화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국한될 수 있는 상태를 훌쩍 뛰어넘었다. 생태환경의 변화가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의 운명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자각하고, 예민한 생명의 감수성으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에 참여하고자 한다.

셋째, 민주주의 운동을 평화운동과 연결시키기 위한 작업에 나서고자 한다. 한국작가회의 작가들은 시민사회와 연대하며, 민중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현장성과 연대성’을 강화할 것이다.


넷째,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국제적 안정을 위협하는 그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평화주의적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제주를 ‘평화의 섬’이 되도록 하는 것은 한반도 긴장 완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에 공헌하는 것이기도 하다. 군사주의적 긴장에 저항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정착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작가들에게는 물리적 힘이 없다. 그러나 글이라는 견고한 정신적 힘이 작가들에게는 있다. 작가들은 평화와 생명의 주재자가 아니다. 하지만 내면의 평화를 불러오는 글을 매개로 공생공락의 평화운동을 실천할 수 있다. 작가들은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에게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강렬한 바람과 생명·인간에 대한 열정적 탐구심이 있다.

평화와 생명을 위한 순리의 길을, 한국 시민사회와 함께 더불어 걷고자 한다.

생명의 가치를 옹호하며, 평화를 뜨겁게 사랑하자.

평화의 감수성으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화하고 연대하자.

오창은 문학평론가·한국작가회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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